브러쉬 업 라이프 리뷰 — 다음 생은 개미핥기? 인생 N회차 일드의 정석

"브러쉬 업 라이프"는 2023년 일본 NTV(닛폰 테레비)에서 방영된 10부작 휴먼 코미디 드라마로, 영어 제목은 "Brush Up Life", 넷플릭스에서는 "Rebooting"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 바카리즈무(バカリズム)가 각본을 쓰고, 칸 영화제 수상작 '어느 가족'의 안도 사쿠라가 주연을 맡았어요. 방영 당시 오리콘 시청자 만족도 1위(99점, 사실상 만점)를 기록했고, 종영 후 국내외에서 28관왕을 달성한 작품입니다.

일본 휴먼 코미디
BRUSH UP LIFE
브러쉬 업 라이프
ブラッシュアップライフ · 2023
장르
코미디 · 판타지 · 휴먼드라마
방영
2023년 1월~3월 · NTV
편수
10화 (회당 약 55분)
각본
바카리즈무(バカリズム)
주연
안도 사쿠라 · 카호 · 키나미 하루카
음악
Fox Capture Plan

줄거리 — 다음 생이 개미핥기라고요?

사이타마현 쿠마가야시 시청에서 일하는 33세 평범한 공무원 콘도 아사미.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실가에서 살고, 두 달에 한 번쯤 초등학교 시절 친구 나치, 미폰과 만나 수다를 떱니다. 로컬 CM 이야기, 담임 선생 근황, 근처에 뭐가 생겼더라 같은 정말 아무 내용 없는 수다요. 어느 날, 이 소중한 일상이 교통사고 한 방에 끝납니다.

새하얀 공간에서 눈을 뜬 아사미 앞에 안내 데스크가 하나 있어요. 사무적인 직원이 담담하게 알려줍니다. "덕이 부족해서 다음 생은 과테말라 남동부의 오오아리쿠이(개미핥기)입니다." 어이가 없지만, 같은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살면서 '덕'을 쌓으면 내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해요. 아사미는 기억을 가진 채 인생 2회차를 시작합니다.

이 드라마가 28관왕을 휩쓴 이유

가장 먼저 말해야 할 건 바카리즈무의 각본입니다. 바카리즈무는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인데, 각본가로도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드라마의 매력은 '인생 리셋'이라는 판타지 설정을 전혀 자극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사미는 인생을 다시 살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시청 공무원으로, 약사로, TV 프로듀서로, 연구원으로 — 매번 다른 직업을 가지지만, 각 직장에서의 소소한 일상이 핵심이에요. 약사일 때는 약 먹을 때 물로 먹어야 한다고 챙겨주고, PD일 때는 엔딩 크레딧 순서를 고민하고, 연구원일 때는 공유 현미경 초점을 원래대로 맞춰놓죠.

그리고 대화. 이 드라마의 진짜 무기예요. 아사미와 친구들의 수다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진짜 친구들 대화를 엿듣는 것 같습니다. 과장된 개그도 없고, 억지스러운 감동 포인트도 없어요. 카라오케 나가기 직전에 외투 입으면서 남은 감자튀김 집어먹는 장면 같은 건 대본에도 없었는데,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거라고 해요. 바카리즈무가 그 장면을 보고 "내가 쓰고 싶었던 게 바로 이거"라고 감탄했을 정도입니다.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별도로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완벽합니다. 칸 영화제 수상작 '어느 가족'의 그 안도 사쿠라가 민방 연속 드라마 첫 주연을 맡은 건데, 회차에 따라 같은 아사미의 자세, 표정, 걸음걸이까지 미세하게 달라져요. 1회차의 평범한 공무원과 5회차의 모든 걸 알고 있는 아사미는 같은 인물이지만 몸 전체의 느낌이 다릅니다. 이 드라마로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연 여우상을 수상했어요.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의 진짜 주제는 '우정'입니다. 연애가 중심이 아니에요. 마츠자카 토리가 전 남자친구 역으로 나오지만 전혀 멋있는 역할이 아니고, 아사미의 연애는 매 회차 비중이 아주 작아요. 남자 개인사 대신 네 여자 친구들의 관계가 전부입니다. 남성 각본가가 쓴 드라마인데 여성 캐릭터 네 명이 전부 행복하게 싱글이고, 남자가 대화 주제에 거의 안 올라온다는 것도 특이한 지점이에요.

아쉬운 점

전체적인 톤이 상당히 평평합니다. 자극에 익숙한 시청자에게는 답답할 수 있어요. 3회차, 4회차 반복되는 구간에서 살짝 루즈해지는 느낌이 들고, "대체 몇 번을 더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다만 8화부터 이야기 구조가 확 뒤집히면서 그때까지의 소소한 장면들이 전부 복선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여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진입 장벽이에요.

일본 로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훨씬 재밌습니다. 90년대~2000년대 일본 학교 문화, 프로필 수첩, 로컬 CM, J-POP 레퍼런스(가랑눈, ORANGE RANGE, secret base 등)가 핵심 정서를 형성하는데, 이 시대 일본 문화에 친숙하지 않으면 감동 포인트의 일부를 놓칠 수 있어요. 물론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했으니 공감되는 부분도 많긴 합니다.

인생 리셋물치고 '미래 지식의 활용'이 제한적입니다. 주식이나 복권 같은 이기적 활용은 당연히 없고, 미래를 바꾸는 것도 주로 주변 사람들의 불행을 막는 데 쓰여요. 이걸 성숙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인생 리셋의 스릴을 기대하고 들어오면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장점
  • 바카리즈무 각본의 자연스러운 대화, 실제 친구 수다 같은 몰입감
  • 안도 사쿠라의 회차별 미세한 연기 변화가 소름
  • 8화 반전 이후 모든 소소한 장면이 복선으로 회수
  • 연애 아닌 여성 우정을 중심에 놓은 드문 구성
  • 10화 완결, 군더더기 없는 구성
아쉬운 점
  • 전체 톤이 평평해서 자극적 전개를 원하면 답답할 수 있음
  • 3~4회차 반복 구간에서 루즈한 느낌
  • 90~2000년대 일본 문화 레퍼런스에 익숙해야 더 재밌음
  • 인생 리셋의 스릴보다 일상 묘사 중심
  • 8화까지 기다려야 구조가 드러나는 진입 장벽

비교 작품 — 일드 인생 리셋물의 계보

인생 리셋이라는 소재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한국의 '다시 한번'이나 '선재 업고 튀어', 일본의 '도쿄 리벤저스' 같은 작품들이 비슷한 틀을 쓰고 있죠. 그런데 브러쉬 업 라이프는 이 소재를 써놓고 대단한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작품이에요. 도쿄 리벤저스가 '과거를 바꿔서 미래의 비극을 막겠다'는 긴장감이라면, 브러쉬 업 라이프는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건 좋아하는 사람과 보내는 평범한 시간'이라는 메시지에 가깝습니다.

같은 바카리즈무 각본의 NTV 드라마 '주거침입의 달인(住住, 2017)'이나 '지미하게 멋진! 교열걸(2016)'이 취향에 맞았다면 이 작품도 좋아할 확률이 높아요.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좋았다면 넷플릭스의 '백엔의 사랑'도 추천합니다.

총평

종합 평점
브러쉬 업 라이프
4.5
/ 5.0
재미
8.5
스토리
9.5
연기
9.5
영상미
7.0
몰입도
9.0

화려한 액션도, 심장을 쥐어짜는 로맨스도 없습니다. 대신 친구들과 감자튀김 먹으면서 떠드는 수다, 공원 공중전화에서 집에 전화 거는 기억, 어릴 적 같이 놀던 사람들이 어른이 돼서도 곁에 있다는 것 — 이런 것들이 인생에서 진짜 소중하다는 걸 조용히 알려주는 드라마예요. 보고 나면 오랜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어집니다.

"
몇 번을 다시 살아도
결국 너희 곁으로 돌아간다
자극적인 전개보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에 공감하는 분,
오랜 친구와의 우정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
🕊️ 인생 N회차 👩‍👩‍👧‍👧 여자 넷의 우정 🎭 안도 사쿠라 명연기 ✍️ 바카리즈무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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