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리키 후기 후기 — 택배 한 상자에 담긴 노동자의 존엄
택배 기사가 배달할 곳에 아무도 없으면 문 앞에 쪽지를 남긴다. "Sorry We Missed You — 부재중이라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그 쪽지에서 왔다는 걸 알면, 의미가 달라진다. 놓친 것은 택배가 아니다. 가족과의 저녁, 아이의 성장, 부부 사이의 온기. 82세의 켄 로치가 2019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가져온 이 영화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21세기 노동 착취의 민낯을 한 가족의 100분 안에 담아낸다.
전원이 비직업 배우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영화다. 특히 데비 허니우드가 병원에서 무너지는 장면 — 연기가 아니라 현실이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자영업이라는 이름의 올가미
뉴캐슬. 금융위기 이후 집도, 직업도 잃은 리키 터너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택배 배송 프랜차이즈의 '자영업자' 기사. 고용된 것이 아니니 자유롭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 자기 사업을 가질 수 있다는 약속. 밴을 사기 위해 아내 애비의 유일한 자산인 차를 판다. 이 순간부터 가족의 붕괴가 시작된다.
리키의 현실은 이렇다. 매일 14시간 배송, 소변을 볼 시간조차 없는 일정, 배송 지연이나 물건 파손에 대한 벌금, 병가를 내면 대체 기사를 자비로 고용해야 하는 규정. 그는 '자영업자'이므로 이 모든 불이익이 자기 책임이다. 한편 차를 잃은 애비는 대중교통으로 환자의 집을 오가며 이중 삼중의 피로에 시달리고, 부모의 빈자리는 사춘기 아들 셉의 비행으로 채워진다.
켄 로치의 카메라는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따라간다. 16mm 필름의 거친 질감, 뉴캐슬의 회색빛 거리, 택배 밴 안의 좁은 공간. 여기에 드라마적 장치나 음악적 과장은 없다. 있는 것은 벌금 영수증과 배송 스캐너의 삐 소리, 그리고 점점 지쳐가는 네 사람의 얼굴뿐이다.
구조가 개인을 삼키는 방식
이 영화의 힘은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말로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시스템의 규칙을 실행하는 중간 관리자일 뿐이다. 리키도, 애비도, 셉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시스템이 설계된 방식 자체가 이 가족을 갈아 넣게 되어 있다. '자영업'이라는 이름은 기업에게는 고용주 책임을 면하게 해주고, 노동자에게는 모든 리스크를 떠안기게 하는 법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 — 영화는 이 구조적 폭력을 한 가족의 101분 안에 압축한다.
비직업 배우들의 연기가 이 리얼리즘을 완성한다. 크리스 히천은 실제 배관공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노동자의 체감을 리키에게 그대로 이식했고, 데비 허니우드는 전국 오디션에서 발탁된 신인임에도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감정의 순간들을 담당한다.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가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보다 우월하다고 평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번에는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켄 로치 특유의 약점도 반복된다.
불행의 적재 한계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일관된 비판은, 한 가족에게 쏟아지는 불행의 양이 극적 설득력의 한계를 넘는다는 것이다. 리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하나하나가 현실적이지만, 101분 안에 이 모든 것이 연쇄적으로 터지면 시청자는 비극에 감정이입하기보다 작위성을 느끼게 된다. 로치가 사회적 분노를 전달하려는 의지가 때때로 스토리텔링의 자연스러움을 압도하는 것이다.
영상적으로도 16mm 필름의 의도된 무장식은 리얼리즘의 장점인 동시에, 시각적 기억에 남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한계로 작용한다. 음악 역시 최소한으로 사용되어 분위기를 조성하기보다 부재로 존재한다. 이는 로치의 일관된 미학적 선택이므로 단순히 낮은 완성도라고 하기 어렵지만, 평점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감점 요인으로 작동한다.
- 비직업 배우 전원 캐스팅이 만든 압도적 리얼리티. 연기와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다
- 긱 이코노미의 구조적 착취를 한 가족의 일상 안에 정밀하게 압축한 각본
-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는 시스템 비판.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데 모두가 무너지는 공포
- 애비의 병원 장면 — 이 한 신(scene)이 영화 전체의 감정을 결산한다
- 불행의 과적. 한 가족에게 쏟아지는 재난의 양이 극적 설득력의 한계를 넘는 순간이 있다
- 사회적 메시지가 스토리텔링을 압도하는 설교적 경향이 간헐적으로 드러남
- 16mm의 의도된 무장식이 시각적 기억에 남는 장면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 최소한의 음악 사용이 감정의 유도 없이 관객을 방치하는 구간이 존재
단점을 적으면서도 이상하게 미안해진다. 이 영화의 '결점'은 현실의 과잉이지, 허구의 과잉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바꿔야 한다
칸 영화제 상영 직후 켄 로치가 남긴 말이 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바꿔야 한다(When things are intolerable, we have to change them)." 이 영화는 그 한 문장을 101분에 걸쳐 보여준다. 라스트 마일이 물류 시스템의 폭탄을 스릴러로 풀었다면, 이 영화는 같은 시스템의 일상적 폭력을 아무런 장치 없이 들이민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리키가 피투성이 얼굴로 밴에 올라타는 마지막 장면이 떠나지 않는다면, 로치의 의도는 성공한 것이다.
영상미 3.5, OST 3.3은 이 영화의 약점이 아니라 미학적 선택의 대가다. 장식을 벗겨낸 자리에 현실이 들어앉는다.
자영업자라는 법적 허구 — 긱 이코노미가 숨기는 것
이 영화가 정확하게 겨냥하는 것은 자영업(self-employed)이라는 고용 형태의 법적 허구다. 리키는 택배 회사와 고용 계약이 아닌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는다. 이 순간 그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가 되고, 유급 휴가도, 병가도, 산재 보상도, 최저임금 보장도 사라진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는 회사가 정한 시간에, 회사가 정한 경로로, 회사가 정한 양의 택배를 배달하는 — 사실상 고용된 노동자다. 이 간극이 긱 이코노미의 핵심적 기만이다.
영화는 이 기만이 가족이라는 단위를 어떻게 해체하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리키의 과로는 리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차를 잃은 애비의 이동 시간 증가, 부모 부재로 방치되는 아이들, 셉의 비행에 대응할 여력의 부재 — 하나의 노동 조건이 가족 전체의 일상을 붕괴시키는 연쇄 반응이 켄 로치의 진짜 주제다. 이것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설계된 착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영국 뉴캐슬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보편적 공감을 얻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 일본의 물류센터 비정규직, 미국의 우버 기사 — 라스트 마일이 일본 물류 산업의 특수성 안에서 같은 문제를 다뤘다면, 이 영화는 그 보편적 원형을 제시한다. 시스템이 다를 뿐 구조는 같다.
- 노동의 가치와 긱 이코노미의 현실에 관심 있는 분
- 비직업 배우의 다큐적 리얼리즘에 끌리는 분
- 라스트 마일의 물류 비판이 인상 깊었던 분
-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좋아한 켄 로치 팬
- 정서적으로 무거운 영화가 부담스러운 분
-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극적 쾌감을 기대하는 분
- 사회 비판 메시지가 앞서는 영화에 피로감을 느끼는 분
- 해피엔딩 없이는 영화를 즐길 수 없는 분
다음에 택배를 받을 때 문 앞에 놓인 "부재중 방문" 쪽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될지 모르겠다. 그 쪽지를 쓴 사람의 하루가 이 영화 한 편 안에 있다.
오늘 도착한 택배의 '라스트 마일'을 달린 사람은 지금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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