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리에게 리뷰 — 신혜선의 1인 2역, 연기는 A+ 각본은 C-

"나의 해리에게"는 2024년 9월부터 10월까지 ENA에서 방영된 12부작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지니TV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넷플릭스나 티빙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품인데요. '스물다섯 스물하나', '마당이 있는 집'의 정지현 감독과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한가람 작가가 의기투합한 만큼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호불호가 꽤 갈렸습니다. 2025년 1월 티빙에 공개되면서 뒤늦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솔직 리뷰 남깁니다.

지니TV 오리지널
Dear Hyeri
나의 해리에게
나의 해리에게 · 2024
장르
로맨스 · 멜로 · 힐링
방영
2024.09.23 ~ 10.29 · ENA
편수
12화 (회당 약 60분)
극본 / 연출
한가람 / 정지현 · 허석원
주연
신혜선 · 이진욱 · 강훈 · 조혜주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 스튜디오힘

줄거리 — 실종된 동생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언니

주은호(신혜선)는 PPS 방송국의 새벽 라디오 DJ입니다. 청취율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까칠한 성격 탓에 방송국 내 평판은 별로 좋지 않아요. 8년을 사귀던 동기 아나운서 정현오(이진욱)와는 4년 전 헤어졌고, 지금은 서로 혐오 관계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호에게는 비밀이 있어요. 퇴근 후에는 '주혜리'라는 전혀 다른 인격으로 바뀌어 다른 방송사 주차관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 혜리는 은호와 달리 밝고 천진하며 세상 모든 것에 행복을 느끼는 캐릭터입니다. 혜리는 그곳에서 FM 아나운서 강주연(강훈)을 만나고, 두 사람 사이에 첫사랑 같은 감정이 싹텁니다.

알고 보니 '혜리'는 오래전 실종된 은호의 여동생 이름이었어요. 동생을 잃은 트라우마로 해리성 정체성 장애가 생긴 은호는, 자신도 모르게 동생의 인격을 만들어낸 거죠. 은호가 자신의 병을 인식하면서 혜리의 인격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고, 여기서 삼각관계와 치유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신혜선의 1인 2역, 이건 진짜 연기 차력쇼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빛나는 건 단연 신혜선의 연기입니다. 우울하고 까칠한 은호와 해맑고 발랄한 혜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연기해냈어요. 표정, 말투, 걸음걸이까지 전부 다릅니다. '철인왕후', '웰컴투 삼달리' 등에서 결핍 있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왔던 신혜선이지만, 이번 작품은 그 중에서도 기술적으로 가장 높은 난이도의 연기였다고 생각해요.

강훈의 약진도 눈에 띕니다. 남중, 남고, 육사 출신의 철벽남 강주연이 혜리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에 눈뜨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는데, 일각에서는 "남자 주인공 이진욱보다 강훈이 더 임팩트 있다"는 평가도 나왔어요. 혜리가 사라진 뒤 절망하는 연기는 진짜 가슴 아프더라고요.

영상미와 OST도 정지현 감독 작품답게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때부터 느꼈던 그 감각적인 색감과 구도가 이번에도 건재해요.

아쉬운 점 — 소재만 좋고 서사가 부실하다

문제는 각본입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부분이에요. 해리성 인격장애라는 참신한 소재를 가져왔는데, 정작 그걸 풀어내는 스토리가 너무 허술합니다.

대표적으로 드라마의 제목이자 핵심 소재인 해리성 장애는 4화 이후로 거의 다뤄지지 않아요. 초반에 혜리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기대했는데, 중반부터는 혜리가 나오지 않고 은호와 현오의 로맨스에 집중합니다. 근데 이 로맨스가 또 서사가 빈약해서, 두 사람이 왜 서로를 사랑하는지, 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지 감정선이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남주인공 정현오 캐릭터에 대해서는 "작가가 이진욱 안티냐"는 농담 섞인 비판까지 나왔습니다. 결혼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8년 연인과 헤어졌다는 설정인데, 그 사정이라는 게 '할머니가 아프니까 다른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식이에요. 2024년에 이런 설정이 먹힐 리가 없죠. 개연성 부재가 후반부로 갈수록 심해져서, 등장인물 중 욕을 안 먹는 캐릭터를 찾기 힘들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아나운서국이라는 배경 설정도 몇 번 억지 갈등을 만드는 데 쓰이고 끝이에요. 방송국 드라마라기보다는 그냥 직장인 로맨스 배경으로 아나운서를 갖다 붙인 느낌입니다.

장점
  • 신혜선의 1인 2역 연기가 압도적, 연기 차력쇼 수준
  • 강훈이 남주보다 더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줌
  • 정지현 감독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색감 건재
  • OST와 전체적인 무드 메이킹이 뛰어남
  • 초반 혜리-주연 커플의 순수한 첫사랑 케미
아쉬운 점
  • 핵심 소재인 해리성 장애가 4화 이후 사라짐
  • 남녀 주인공 로맨스 서사가 빈약하고 불친절
  • 남주 정현오 캐릭터의 개연성 심각하게 부족
  • 설정과 캐릭터가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느낌
  • 지니TV 독점으로 접근성이 낮았던 점

'지리지널'의 벽 — 좋은 배우를 만나고도 빛을 못 본 드라마

이 드라마의 비운 중 하나는 '지니TV 오리지널'이라는 유통 구조입니다.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 주요 OTT에서 볼 수 없고, KT 셋톱박스 사용자이거나 ENA 본방을 봐야 했어요. 시청자들 사이에서 '지리지널'(지니TV 오리지널의 비하 표현)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로 접근성이 낮았습니다.

게다가 지니TV 유료 구독자에게는 4회 선공개가 제공되면서 스포일러가 난무했고, 이 때문에 드라마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는 불만도 많았어요. 결국 2025년 1월에야 티빙에 공개되면서 뒤늦게 시청하시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시청률은 2%대에서 시작해 최고 3.6%를 찍었고, 화제성은 굿데이터코퍼레이션 기준 ENA 역대 2위를 기록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영상미에 비하면 아쉬운 성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에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팬이라면

한가람 작가의 전작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좋아하셨다면, 이 드라마의 감성 자체는 비슷하게 느끼실 수 있어요.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치유해나간다는 큰 틀은 같거든요. 다만 '날좋찾'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했다면, 이 드라마는 해리성 장애라는 무거운 소재와 밝은 혜리 캐릭터, 어두운 은호의 과거가 뒤섞이면서 톤이 좀 산만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의도는 충분히 느껴지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이 좀 약했다고 생각해요.

총평

종합 평점
나의 해리에게
3.0
/ 5.0
재미
5.5
스토리
4.0
연기
9.0
영상미
8.5
몰입도
5.0

좋은 배우, 좋은 감독, 참신한 소재를 가지고도 각본의 힘이 부족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신혜선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고, 스토리 때문에 중간에 이탈한 분도 많아요. '볼까 말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볼까' 쪽에 가까운, 하지만 강력 추천하기는 어려운 작품입니다.

"
연기는 A+, 연출은 A,
각본은 C-
신혜선의 연기력을 감상하고 싶거나,
감성적인 힐링 로맨스 무드가 필요한 분에게 추천합니다
🎭 1인 2역 연기 💔 트라우마 치유 🎬 감각적 영상미 📺 티빙 공개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러브 비트윈 라인즈 리뷰 — 극본살인 게임에서 시작된 중국 로맨스, 볼 만할까?

권총 리뷰 — 가짜 환관과 가짜 황제의 권모 로맨스, 숏드라마의 한계를 넘다

옥을 찾아서 리뷰 — 한국 넷플릭스 뚫은 첫 중드, 무엇이 달랐나

듄 파트 1 & 2 리뷰 — 빌뇌브의 SF 서사시, 파트 3 정보까지 총정리

사운드트랙 #1 리뷰 — 짝사랑이 음악이 되는 4부작 힐링 로맨스

술꾼도시여자들 시즌1·2 통합 리뷰 — 한국판 '언니들의 술자리',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

아무르 리뷰 — 칸 황금종려상·아카데미 수상, 사랑의 가장 어두운 얼굴

폭탄 리뷰 — 일본 아카데미 석권, 사토 지로 '10원 대머리'의 탄생

헤어질 결심 리뷰 — 칸 감독상 수상작, 박찬욱 최고작일까?

블랙 스완 리뷰 — 완벽을 향한 욕망이 자신을 삼킬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