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브스 리뷰 —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알렉스 갈랜드의 철학 SF 스릴러
"디브스(Devs)"는 2020년 FX on Hulu에서 공개된 미국 SF 스릴러 미니시리즈입니다. 〈엑스 마키나〉, 〈애니힐레이션〉으로 유명한 알렉스 갈랜드가 각본·연출·제작을 모두 혼자 맡았고, 총 8화의 미니시리즈로 완결된 작품이에요. 실리콘밸리의 비밀 개발팀, 그리고 자유의지와 결정론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퀀텀 컴퓨팅이라는 현대 기술로 풀어낸 독특한 작품입니다. 〈세버런스〉보다 4년 먼저 '테크 기업 공포'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평도 받고 있습니다.
줄거리 — 비밀 개발팀 'DEVS' 안에는 무엇이 있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릴리 찬(소노야 미즈노)은 남자친구 세르게이와 함께 실리콘밸리 최고의 테크 기업 아마야(Amaya)에 다닙니다. 어느 날 세르게이가 사내 비밀 개발팀 'Devs'에 발탁되어 첫 출근을 하지만, 그날 밤 갑작스럽게 자살로 처리된 채 사망합니다. 릴리는 이를 믿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곧 그 모든 길이 카리스마 넘치는 CEO 포레스트(닉 오퍼맨)와 외부인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Devs' 팀으로 향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DEVS'가 숨기고 있는 건 단순한 기업 비밀이 아닙니다. 그 공간에서는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과거와 미래를 시각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의 철학적 전제가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건은 인과관계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고, 충분히 강력한 컴퓨터가 있다면 미래도 계산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실재하는가, 아니면 그저 우리가 믿고 싶은 환상인가.
알렉스 갈랜드만이 만들 수 있는 SF — 이 드라마의 강점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영상미입니다. 'Devs' 팀의 본부는 황금빛 샹들리에 같은 양자컴퓨터가 가운데 떠 있는 유리 구조물로, 드라마 역대 최고 수준의 세트 디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매 에피소드 오프닝의 정적인 롱테이크, 안개 낀 실리콘밸리의 풍경까지 모든 프레임이 공들인 회화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촬영감독 롭 하디와 알렉스 갈랜드의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에요.
음악도 이 드라마의 중요한 기둥입니다. 〈엑스 마키나〉와 〈애니힐레이션〉에서도 함께 작업했던 제프 배로우 & 벤 솔즈베리의 사운드트랙은 불안하고 초월적인 드라마의 정서를 정확히 받쳐줍니다. 이미지와 음악만으로도 충분한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드라마입니다.
닉 오퍼맨의 캐스팅은 천재적인 선택입니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으로 코미디 배우로 각인된 그가, 자신의 딸을 잃고 그 상실감을 기술로 극복하려는 CEO 포레스트를 연기하면서 완전히 다른 면모를 드러냅니다. 따뜻함과 냉혹함이 공존하는 그 모순적인 인물이 이 드라마 전체를 지탱합니다.
아쉬운 점
가장 큰 논란은 주인공 릴리입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릴리에게 감정이입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철학적 무게감에 비해 릴리의 내면 묘사가 얕다는 느낌이고, 소노야 미즈노의 연기 또한 호불호가 갈립니다. 페이스도 걸림돌이에요. 알렉스 갈랜드 특유의 느린 전개가 8화 전반에 걸쳐 이어지는데, 〈엑스 마키나〉보다 훨씬 길게 그 인내심을 시험합니다. 결말도 호불호가 갈립니다. 야심차게 쌓아올린 철학적 전제가 엔딩에서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 모든 프레임이 회화 같은 압도적 영상미 — 황금빛 양자컴퓨터 세트
- 제프 배로우 & 벤 솔즈베리의 초월적인 사운드트랙
- 닉 오퍼맨의 반전 연기 — 코미디 배우의 완벽한 드라마 전환
- 자유의지·결정론·다중우주를 SF로 풀어낸 독창적 세계관
- 8화 완결 미니시리즈, 부담 없는 분량
- 주인공 릴리 캐릭터가 얕다는 지적 — 감정이입 어렵다는 시청자 많음
- 갈랜드 특유의 느린 전개, 인내심을 꽤 시험함
- 결말이 쌓아온 철학적 전제를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평
- SF 지식 없이는 세계관 이해가 다소 어려울 수 있음
- 유머나 오락적 요소 거의 없음 —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고 진지
비슷한 작품 — 이 드라마가 취향이라면
알렉스 갈랜드의 전작 〈엑스 마키나〉는 디브스를 보기 전에, 혹은 보고 나서 바로 이어서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같은 창작자가 인공지능과 의식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디브스보다 훨씬 좁고 밀도 있게 들여다봅니다. 테크 기업과 직장 공포를 다룬 측면에서는 Apple TV+의 〈세버런스(Severance)〉와 자주 비교됩니다. 세버런스가 훨씬 대중적이고 오락성이 강하지만, 디브스는 더 철학적이고 영화적입니다. HBO 〈웨스트월드〉 시즌1과도 비슷한 SF 철학 스릴러 계보에 놓이는 작품이에요.
총평
야심이 넘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드물고 귀합니다. 알렉스 갈랜드의 팬이라면 무조건 봐야 하고, SF 철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 엑스 마키나, 애니힐레이션을 좋아했다
- 자유의지, 결정론 같은 철학적 주제를 SF로 즐기고 싶다
- 스토리보다 영상미와 분위기로 보는 드라마를 선호한다
- 8화 완결, 짧고 묵직한 미니시리즈를 찾고 있다
- 빠른 전개와 명확한 사건 중심의 스릴러를 원한다
- 주인공에게 강하게 감정이입해야 재미있다
- 결말이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답답하다
- 오락성 없는 무거운 철학 SF는 취향이 아니다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알렉스 갈랜드의 팬이라면, SF 철학에 관심 있다면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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