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리뷰 — WALL-E 감독이 만든 SF 대서사, 왜 혹평을 받았을까?
"눈 깜짝할 사이에(In the Blink of an Eye)"는 2026년 2월 27일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미국 SF 드라마 영화입니다. 감독은 픽사의 거장 앤드류 스탠턴 — WALL-E와 니모를 찾아서를 만든 바로 그 사람이에요. 무려 4만 5천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선사시대·현재·미래를 하나로 엮는 대서사 SF인데, 선댄스 영화제에서 Alfred P. Sloan Prize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개되자마자 로튼 토마토 14%라는 처참한 평단 성적표를 받았어요.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줄거리 — 4만 5천 년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이야기
영화는 세 개의 시간대를 교차합니다. 첫 번째는 기원전 4만 5천 년경,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져가던 선사시대. 마지막 생존자 가족의 가장 손(호르헤 바르가스)이 가족을 지키며 인류의 다음 세대를 이어가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현재, 과학자 코클리(라시다 존스)가 삶과 죽음, 인간 연결의 의미와 씨름하는 이야기. 세 번째는 400년 뒤 미래, 머나먼 외계 행성 케플러 16b에서 인류의 생존을 이어가는 여성(케이트 맥키논)의 이야기입니다.
이 세 이야기는 '도토리' 하나를 공통 매개체로 연결되며, 희망과 연결, 생명의 순환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합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매그놀리아, 인터스텔라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제작진이 직접 밝혔어요. 목표치는 굉장히 높았습니다.
분명히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일단 영상은 꽤 볼 만합니다. 촬영감독 올레 브라트 비르켈란의 카메라는 각 시간대마다 다른 질감과 색감을 능숙하게 표현하고, 의상 디자인도 시대별 고증에 공을 들였습니다. 극장 스크린이었다면 더 압도적이었을 장면들이 적지 않습니다.
토마스 뉴먼의 음악도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부분입니다. 니모를 찾아서와 WALL-E에서도 스탠턴과 호흡을 맞췄던 뉴먼은, 이번에도 장대하고 감성적인 스코어로 영화의 빈자리를 최대한 채워줍니다. 케이트 맥키논이 코미디 이미지를 탈피해 진지한 드라마 연기에 도전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은 맞습니다.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에 의미있다는 메시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인간 연결에 대한 경외감. 이건 실제로 가치 있는 주제예요.
아쉬운 점 — 야심과 실행 사이의 간극
문제는 94분이라는 러닝타임입니다. 세 개의 시대를 각각 제대로 다루려면 최소 세 배는 필요한 소재인데, 그걸 94분에 쑤셔 넣다 보니 각 이야기의 인물들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할 시간이 없어요. 인물들이 왜 이 선택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충분히 보여주기도 전에 다음 시간대로 넘어가 버립니다. 관객이 느껴야 할 감동을 대사와 음악이 대신 '설명'해주는 방식이 반복됩니다.
세 이야기 사이의 편차도 큽니다. 선사시대 파트는 단순하지만 드라마적 힘이 있는 반면, 현재와 미래 파트는 감정적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알리익스프레스 버전"이라는 혹평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앤드류 스탠턴의 실사 역량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뭐든 가능한 세계를 그렸던 그가, 실사로 오면 연출이 평면적으로 변하고 배우들의 대화가 어색해지는 패턴이 전작 존 카터에 이어 이번에도 반복됩니다. 픽사의 마법은 분명 그 스튜디오의 특수한 환경과 방법론 속에서 나온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 토마스 뉴먼의 음악 — 사실상 영화의 감동을 혼자 담당
- 촬영과 의상 등 비주얼 프로덕션은 수준급
- 케이트 맥키논의 코미디 탈피 드라마 도전, 신선함
- 생명의 유한함과 인간 연결이라는 주제의식은 진지하고 의미 있음
- 선사시대 파트는 단순하지만 드라마적으로 가장 효과적
- 94분에 4만 5천 년을 쑤셔 넣은 탓에 인물 서사 모두 미완성
- 감동을 보여주지 않고 음악과 대사로 '설명'하는 방식
- 세 이야기 사이 드라마 강도의 편차가 너무 큼
- 앤드류 스탠턴의 실사 연출 — 존 카터의 악몽 재현
- RT 14%의 처참한 평단 반응, 과잉 감상주의 비판
비슷한 작품이 궁금하다면
같은 '시간을 가로지르는 여러 이야기' 형식의 SF를 좋아한다면, 훨씬 높은 완성도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워쇼스키 자매의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는 여섯 개의 시간대를 교차하면서도 인물 감정이 충분히 살아있고, 테런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2011)는 비슷한 우주적 스케일을 훨씬 시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영화 자체가 레퍼런스로 꼽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인터스텔라도 물론 추천합니다.
총평
WALL-E를 만든 사람이 왜 이걸 만들었는지는 이해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고, 그 말은 틀리지도 않아요. 다만 영화 자체가 그 말을 실제로 '느끼게' 해주지 못합니다. 음악이 울리면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인물들이 그 감동을 받쳐주지 않아서 애매하게 멈춰버리는 경험. 야심은 별 다섯 개, 실행은 별 두 개짜리 영화입니다.
94분에 담으려다 모든 걸 잃었다
깊은 감동을 기대한다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나 트리 오브 라이프를 추천합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