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리뷰 — 아카데미 작품상, 원-컷 영화의 기준
드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배우 한 명이 속옷 바람으로 브로드웨이 극장 복도를 걷고 있다. 카메라는 따라간다. 멈추지 않는다. 119분 동안.
에드워드 노턴의 첫 리허설 장면을 보는 동안, 마이크 샤이너가 진짜 무섭다는 걸 깨달았다. 리건이 아니라 내가 열등감을 느꼈다.
속옷 바람의 남자가 뉴욕 거리를 걷는다
공연 전날 밤, 조명 하나가 리허설 배우 머리 위로 떨어진다. 리건은 내가 조명을 떨어뜨렸다고 말한다. 대타가 필요하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문제아 마이크 샤이너가 합류한다. 프리뷰 공연까지 사흘. 리건의 머릿속에서는 버드맨이 속삭인다: 이따위 짓 그만하고 버드맨 4탄이나 찍어. 자금은 바닥나고, 전 부인과 딸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평론가는 보지도 않고 혹평을 예고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컷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여러 숏이지만, 에마누엘 루베스키의 카메라는 편집점을 지워버린다. 극장의 좁은 복도, 楽屋 뒤, 뉴욕 거리, 옥상 — 카메라가 멈추지 않으니 리건도 멈출 수 없다. 환상과 현실, 무대 위와 아래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루베스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았는데, 2년 연속(그래비티에 이어)이었다.
마이클 키튼이라는 배우의 자화상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마이클 키튼이 연기하는 리건 톰슨이 그냥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배트맨 역할 이후 큰 히트작 없이 잊혀져 가던 마이클 키튼 — 리건과 거의 동일한 궤적이다. 그 자전적 투영이 연기에 실제 무게를 싣는다. 리건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키튼은 연기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름 하나하나가 연기한다고 표현한 평이 과장이 아니다.
안토니오 산체스의 드럼 솔로 OST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선택이다. 오케스트라도 없고 멜로디도 없다. 타악기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이 카메라와 함께 달린다. 처음엔 거슬릴 수 있다. 익숙해지면 리건의 내면 박동처럼 들린다. 세자르 영화제 음악상을 받았고, 아카데미에선 규정 문제로 후보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 한 명이 연주하는 즉흥 드럼이 전통적인 "영화음악 작곡"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아쉬운 지점도 있다. 재미(오락성) 측면에서 이 영화는 분명히 모두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극장 복도와 楽屋만 오가는 밀폐된 공간, 쉬지 않는 카메라, 드럼 솔로 — 국내 관객 평이 6.6에 머문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개봉 당시 초반 대사에서 불거진 논란도 흥행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는 적극적으로 당기지 않는다. 들어오고 싶은 사람에게만 문을 연다.
- 원-컷 스타일 카메라 — 루베스키의 촬영이 리건의 정신 상태와 동기화되는 경험
- 마이클 키튼의 자전적 연기 — 허구와 실제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들
- 드럼 솔로 OST — 멜로디 없이 타악기만으로 심리 긴장을 구현하는 이례적 선택
- 에드워드 노턴의 마이크 샤이너 — 리건의 열등감을 직접 건드리는 완벽한 대척점
- 강한 진입 장벽 — 밀폐된 공간과 쉬지 않는 카메라가 편안한 감상을 허락하지 않음
- 오락성 의도적 부재 — "재미없다"는 반응을 영화 자체가 예상하고 설계한 것이나, 이것이 장벽이 되는 건 사실
- 결말의 해석 다양성 — 열린 결말이 깊이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일부에겐 회피로 읽힌다
단점이라고 쓴 것들을 다시 읽으면, 결국 이 영화가 의도한 것들이다. 그래도 모든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다.
무지의 미덕이라는 제목에 대하여
원제의 부제 — "예기치 않은 무지의 미덕(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 이 영화 안에서 여러 방향으로 읽힌다. 리건은 브로드웨이 예술 세계를 모르는 채로 뛰어들었기에 오히려 어떤 지점까지 갈 수 있었다. 반대로, 자신을 버드맨으로만 아는 대중은 그 무지 속에서 행복하다. 평론가 태비사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 작품을 보기도 전에 결론을 내린다. 이 영화는 무엇을 모를 때 오히려 가능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재관람이 권장되는 것은 처음 볼 때 너무 많은 것을 놓치기 때문이기도 하고, 두 번째에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상 3.5는 이 영화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즐거운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차이가 이 영화의 전부다.
원-컷이라는 형식은 내용이다: 편집점을 지운 카메라가 말하는 것
버드맨을 "원-컷 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기술적 묘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다. 편집이란 선택이다 —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길 것인가의 결정. 그러나 이 영화는 편집점을 지워버림으로써, 리건 톰슨에게 도망갈 곳을 주지 않는다. 컷이 없으면 인물도 장면 전환 뒤로 숨을 수 없다. 카메라는 리건의 등 뒤를 따라가다가, 그의 얼굴 앞으로 돌아온다. 쉬지 않고.
이 형식은 또한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허문다. 연극은 컷 없이 실시간으로 흐르는 장르다. 무대 위와 무대 뒤, 楽屋과 거리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버린 이 영화의 카메라는 리건이 구분하려는 것들 — 배우와 캐릭터, 예술과 상업, 버드맨과 리건 — 을 경계 없이 섞어버린다. 리건이 진짜 총을 들고 무대에 오를 때, 그것이 연기인지 현실인지 관객도 알 수 없다. 카메라가 그 구분을 진작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냐리투는 이 형식을 통해 장르 자체에 질문한다. 슈퍼히어로 영화와 예술 영화, 오락과 비평 — 이 영화는 그 이분법이 얼마나 임의적인지를 드러낸다. 버드맨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건이 그 목소리를 없애려 할수록 더 커진다. 형식이 내용과 분리되지 않는 영화, 그것이 버드맨이 21세기 클래식 목록에 오르는 이유다.
-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챙겨보는 분
- 촬영·편집 기법 자체에 관심이 있는 분
- 마이클 키튼·에드워드 노턴의 극한 연기를 보고 싶은 분
- 두 번 이상 보며 해석이 달라지는 영화를 즐기는 분
- 명확한 서사와 카타르시스를 원하는 분
- 쉬지 않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피로한 분
- 드럼만 나오는 OST가 처음부터 거슬리는 분
- 결말이 열려 있으면 만족감이 없는 분
※ 연관 작품 링크는 게시 후 순차 업데이트 예정
영화가 끝나고 드럼 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들렸다. 그게 얼마나 갔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는 샘의 표정 — 어떻게 읽었나요?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