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스 리뷰 — 몸이 녹아드는 바디 호러 로맨스, 과연 볼 만할까

바디 호러는 언제나 몸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말해왔다. 크로넨버그가 살점에 기술을 녹여 자본과 욕망을 이야기했다면, 신인 감독 티보 에맹은 살점에 사물을 녹여 팬데믹 시대의 고립과 친밀감을 꺼낸다. 2024년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미드나잇 매드니스 섹션의 화제작으로 등장해 "TIFF 최고의 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전 세계 13개 부문을 수상한 프랑스-벨기에 합작 영화 엘스가 2025년 3월 국내 극장에 상륙했다.

FILM REVIEW
ELSE
엘스
2024 · 프랑스 / 벨기에 · 바디 호러 · 로맨스
Director
티보 에맹 (Thibault Emin)
상영시간
102분
각본
티보 에맹 · 알리스 뷔토 · 엠마 산도나
음악
시다 샤하비 · June Ha
세계 초연
2024 TIFF 미드나잇 매드니스
국내 개봉
2025년 3월 19일
외부 평점
IMDb 5.4
RT 평론가 집계 중
연기
1
앙스 (Anx) 마티외 샹퍼르 Matthieu Sampeur
파티에서 카스를 만난 내성적이고 불안이 많은 남자. 세상의 이상 징후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인물로, 그의 예민함이 영화 전체의 관찰자 시점을 만들어낸다.
2
카스 (Cass) 에디트 프루스트 Edith Proust
자신감 넘치고 직설적인 여자. 앙스와 하룻밤을 보낸 뒤 그의 아파트에 갇히게 된다. 전반부 로맨틱 코미디의 구심점이지만, 영화가 어두워질수록 캐릭터의 결을 읽기가 어려워진다.
3
이웃 / 외부 세계 리카 미나모토 Lika Minamoto 외
환풍구 너머 목소리, 드론, 군인 등 아파트 외부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간접적으로만 존재한다. 이 부재 자체가 봉쇄된 세계의 공포를 구축하는 연출적 선택이다.

줄거리 — 몸이 녹아드는 로맨스, 아파트라는 밀실

파티 다음 날 아침, 앙스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낯선 여자 카스와 눈을 마주친다. 전날 밤의 기억이 SNS 사진 속에 흩어져 있는 동안, 앙스의 시선은 사진 한 귀퉁이에 닿는다. 팝콘을 집는 낯선 남자의 손등, 뭔가 이상하게 돋아 있는 것들. 그게 시작이다. 뉴스가 흘러나오고, 정부가 봉쇄령을 내리고, 밖의 세계에선 인간의 몸이 주변 사물과 서서히 합쳐지는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두 사람은 앙스의 아파트 안에 갇힌다. 처음엔 불편한 동거였던 것이 조심스러운 로맨스로 바뀌고, 로맨스는 점점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들과 뒤섞인다. 창밖의 풍경이 달라지고, 환풍구 너머 이웃의 목소리가 기묘하게 변하고, 전기가 끊기고, 아파트 자체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두 사람이 원하는 것과 두 사람을 잠식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진다.

크로넨버그의 바디 호러에 로맨스의 껍질을 씌운 것처럼 들리지만, 엘스는 그보다 훨씬 더 내밀하고 동시에 더 불확실하다. 장르 경계를 뭉개는 것을 즐기는 아르트하우스 공포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팬데믹 시대의 고립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관객이라면 이 밀실의 공기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 봐야 하나 — 이 영화가 가진 것들

무엇보다 엘스의 가장 큰 무기는 비주얼이다. 전반부는 카스의 개성만큼이나 컬러풀하고 따뜻한 팔레트로 아파트를 채운다. 두 사람 사이에 싹트는 로맨스와 공간의 색채가 같은 온도를 공유한다. 그런데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서 색이 빠지기 시작하고, 후반부는 거의 흑백에 가까운 차갑고 황량한 화면으로 전환된다. 이 색채 설계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감정 곡선이 설명된다. 말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살결과 콘크리트, 피부와 가구가 뒤섞이는 신체 변형 장면들은 기존 바디 호러에서 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질감을 가진다. CG에 의존하기보다 실물 특수효과와 실험적인 미장센을 결합해, 혐오스럽기보다는 기묘하게 매혹적이다. 이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에서 영화는 충분히 아름답다. 시체스에서 최우수 특수효과상을 받은 것은 납득할 만하다.

음악도 작품과 잘 맞는다. 작곡가 시다 샤하비(Shida Shahabi)는 미니멀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텍스처로 공포와 낭만이 공존하는 이 영화의 이상한 온도를 잡아낸다. 장면 사이를 꿰매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공기처럼 스며드는 종류의 음악이다.

아쉬운 점

문제는 3막이다. 영화는 탁월한 전제와 전반부의 장르 혼합 실험을 3막에서 충분히 매듭짓지 못한다. 폐허어(lungfish)에 관한 우화가 결말부에 등장하면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드러나지만, 개념의 아름다움에 비해 서사적 해소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의도적으로 열려 있는 결말이라 해도, 그 공백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채로 끝난다는 인상이 강하다. 두 인물의 감정선이 더 충분히 쌓이기 전에 공포가 덮쳐버리는 것도 아쉽다. 카스라는 캐릭터는 전반부에 매력적이지만 영화 후반에서는 점점 캐릭터보다 장치에 가까워진다.

장점
  • 컬러에서 흑백으로 이어지는 색채 설계의 완성도
  • 살점과 사물이 뒤섞이는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특수효과
  • 아파트 밀실 서사의 팬데믹 시대 공기를 정확히 포착
  • 시다 샤하비의 미니멀 스코어와 영화 톤의 높은 정합성
  • 바디 호러와 로맨스를 동일 선상에 놓는 철학적 전제
아쉬운 점
  • 3막 구조가 전제의 무게를 따라가지 못하는 서사적 공백
  • 카스 캐릭터가 후반부에서 장치로 환원되는 아쉬움
  • 급격한 톤 전환이 반복되며 감정 몰입을 끊는 순간들
  • 비유와 상징이 과잉되어 작동하지 않는 몇몇 시퀀스
  • 두 인물의 감정 축적 시간이 충분하지 않음

총평

종합 평점
엘스
3.5
/ 5.0
재미
5.5
스토리
7.2
연기
7.0
영상미
8.7
OST
7.8
몰입도
6.5

엘스는 완성된 영화라기보다 가능성이 완성을 앞서버린 영화다. 영상미와 전제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분명히 데뷔작의 한계를 넘는다. 다만 그 야심이 서사 설계까지 동등하게 지탱되지 않는다. 재미 항목이 낮은 것은 이 영화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오락 쾌감보다 감각과 사유를 먼저 요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Analysis — 장르의 문법

엘스는 바디 호러의 언어로 로맨스의 질문을 던진다 — 그리고 답을 주지 않는다

바디 호러는 전통적으로 타자(他者)에 대한 공포를 몸을 통해 형상화해왔다. 크로넨버그가 플레시가 기계에 융합되는 것을 보여줄 때, 공포는 몸의 자율성 상실에서 온다. 그런데 엘스는 이 공식을 비튼다. 여기서 몸이 사물에 융합되는 것은 공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친밀감의 극단적 은유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되고 싶다는 욕망 —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영화는 글자 그대로 보여준다. 호러의 문법이 로맨스의 질문을 처리하는 것이다.

전반부의 로맨틱 코미디적 터치는 단순한 장르 혼합이 아니다. 앙스가 SNS 사진 속 손등의 이상을 발견하는 장면, 창밖에서 들려오는 이웃 목소리의 점진적 변화 — 이 디테일들은 로맨스의 설레임과 공포의 예감을 같은 질감으로 처리한다. 감독은 사랑과 전염병을 동일한 문법으로 묘사하려 한다. 둘 다 퍼진다. 둘 다 몸을 바꾼다. 둘 다 되돌리기 어렵다.

결말의 폐어(lungfish) 우화 — 물속에서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 — 는 변형을 진화로 읽으라는 감독의 메시지다. 전멸이 아니라 변태(metamorphosis)로서의 바디 호러. 그 야심은 장르 계보 안에서 분명히 새롭다. 다만 이 전언이 서사적 해소보다 개념으로 먼저 전달된다는 것, 그 점이 엘스를 인상적이지만 아직 미완인 작품으로 남게 한다. 티보 에맹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청 주의
성적 장면 포함 (초반부) 신체 훼손 · 바디 호러 이미지 강렬한 섬광 및 스트로브 장면
이 작품, 나한테 맞을까?
O  이런 분께 추천
  • 크로넨버그, 줄리아 뒤쿠르노 같은 유럽 바디 호러를 즐긴 분
  • 영상미와 미장센 중심의 아트하우스 공포를 찾는 분
  • 팬데믹 시대의 고립과 친밀감을 다룬 서사에 공감하는 분
  • 완벽한 마무리보다 독창적인 전제를 선호하는 분
X  이런 분은 패스
  • 명확한 스토리 해소와 깔끔한 결말을 원하는 분
  • 점프스케어나 전통 슬래셔 호러를 기대한다면
  • 신체 변형 이미지에 강한 불편감을 느끼는 분
  • 로맨스를 기대하고 갔다가 바디 호러를 만나는 게 싫은 분
"
살결이 콘크리트와 녹아드는 것처럼, 두 사람의 경계도 녹아든다 — 이 기묘한 매혹이 3막까지 버텼다면 걸작이었을 것이다
바디 호러를 사랑하는 관객, 아트하우스 장르 팬에게 추천
#바디호러 #프랑스영화 #아파트밀실 #팬데믹은유 #TIFF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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