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3시의 연인 리뷰 — 일본 불륜 멜로의 결말, 사랑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2014년 후지TV에서 평균 시청률 13.9%를 기록하며 사회적 현상이 된 드라마 <메꽃 ~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의 극장판 속편이다. 동명의 원제 <昼顔>(히루가오, 2017)로 제작된 이 영화는 드라마 결말로부터 3년 후를 배경으로, 이별을 선택했던 두 사람이 우연히 재회하면서 다시 불가능한 사랑 앞에 서는 이야기를 담는다. 국내에는 2019년 6월 극장 개봉했으며, 이후 넷플릭스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줄거리 — 3년 후 미하마, 반딧불이의 밤
무너진 생활의 파편들을 안고 사와는 미하마라는 낯선 해안 마을로 이주했다. 이혼, 직장 상실, 친구들의 외면을 감수하고 얻어낸 평온이지만 그것은 사실 형벌에 가까운 고요함이다. 그는 이름도 바꾼 채 해변 식당에서 일하며, 과거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러다 강연 홍보지에서 기타노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그 작은 평화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법적 합의서가 놓여 있다. 만남이 발각될 경우 사와가 기타노의 아내 노리코에게 매달 30만 엔을 평생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기타노는 반딧불이를 핑계 삼아 미하마를 찾아오고, 사와는 뿌리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 영화의 갈등은 단순히 사랑 대 도덕이 아니다. 3년을 버텨온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때, 거기서 감수해야 할 것들의 무게가 이미 달라져 있다는 점에서 비극은 더 깊어진다.
극장판은 전편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감상이 가능하지만, 드라마를 봤을 때 비로소 진짜 맥락이 열린다. 억눌린 감정이 오랜 시간 끝에 폭발하는 류의 멜로를 좋아한다면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다. 다만 마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다가는 당황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불륜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가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결말에서 비정하리만큼 솔직한 답변을 내놓는다.
무엇이 좋았나 — 여름과 반딧불이, 그리고 이토 아유미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은 본래 TV 연출자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감각이 충분히 살아 있다. 야마모토 히데오의 촬영이 담아낸 미하마의 여름 풍광은 뜨겁고도 쓸쓸하다. 햇빛이 내리찍는 해안가와 어둠 속 반딧불이가 깜박이는 숲이 교차하는 방식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시각화한다. 특히 반딧불이 장면은 지나치게 상징적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그 빛이 짧게 살다 사라지는 성질 자체가 이 사랑의 성격과 정직하게 맞닿아 있다.
연기의 중심은 단연 이토 아유미다. 드라마에서 노리코는 냉담하고 오만한 악처 포지션에 가까웠다. 영화는 이 인물에게 전혀 다른 층위를 부여한다. 남편이 다시 그 여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혼을 거부하지 못하는 노리코의 내면, 수치심과 집착과 사랑이 뒤엉킨 붕괴 과정을 이토 아유미는 과장 없이 소화해낸다. 여러 해외 리뷰에서 "이 영화를 살린 연기"로 꼽히는 것이 납득되는 수준이다. 우에토 아야 역시 3년간의 회한이 몸 전체에 배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주제가 LOVE PSYCHEDELICO의 <Place of Love>와 칸노 유고의 드라마 음악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새로운 분위기를 덧입히기보다 드라마의 여운을 유지하는 쪽을 택한 선택이 이 영화의 정서적 연속성을 지탱한다.
아쉬운 점
전편 드라마 없이 보면 인물들 사이의 감정적 무게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125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는 두 사람의 재회와 갈등을 처음부터 쌓아올리지 않고, 전편의 감정 자산을 전제로 작동한다. 속편 영화의 구조적 한계다. 또한 3막부터 이야기가 갑자기 가속되면서 결말이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는 비판도 유효하다. 영화가 선택한 도덕적 응보는 일관성이 있지만, 그 방식이 너무 극적이어서 오히려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상징(반딧불이, 조개, 바다)이 반복되다 보면 감성이 중후반부터 피로해지는 지점도 있다.
-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의 영화적 감각 — 여름 해안의 뜨겁고 쓸쓸한 영상미
- 이토 아유미의 압도적인 조연 연기 — 드라마보다 훨씬 입체적인 노리코
- 드라마의 감정 자산을 그대로 이어받는 정서적 연속성
- 불륜을 낭만화하지 않는 태도 — 대가와 응보에 솔직한 서사
- LOVE PSYCHEDELICO 주제가를 포함한 OST가 분위기에 정확히 맞음
- 전편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인물의 감정적 무게가 반감됨
- 3막의 결말이 너무 극적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짐
- 반딧불이, 바다 등 상징의 반복 사용이 중반 이후 피로감을 줌
- 멜로드라마 공식을 충실히 따라 장르 팬 외에는 신선함이 제한적
- 남주인공 기타노의 심리 묘사가 상대적으로 얕음
총평
IMDb 5.9의 외부 평가보다 훨씬 볼 만한 영화다. 다만 그 평가가 나온 맥락도 이해된다. 전편 드라마를 모르고 보면 감정의 진입이 어렵고, 결말의 작위성이 거슬린다면 끝에 가서 당황할 수 있다. 반면 드라마를 보고 그 여운 위에서 이 영화를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리 읽힌다. 재미 점수(7.5)가 다른 항목에 비해 낮은 것은 이 작품이 본래 '재밌다'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름 멜로의 아름다운 외관 안에 응보와 낙인과 타협 불가능한 도덕률이 들어 있는 영화. 즐기러 보는 영화는 아니고, 느끼러 보는 영화다.
이 영화는 불륜을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가 처벌하는 것을 보여준다
'히루가오'(昼顔)는 원래 일본에서 평일 낮에 외도하는 주부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루이스 부뉘엘의 1967년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에서 파생된 이 개념은, 남편이 일하는 시간에 여성이 욕망을 실현한다는 구도 자체가 이미 계급적·젠더적 시선을 내포하고 있다. 이 드라마와 영화는 그 단어를 제목으로 채택함으로써, 사와가 처음부터 특정한 낙인의 카테고리 안에 놓여 있음을 선언한다.
영화 속 사와가 미하마에서 겪는 일들이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과거가 발각되자 시장 상인들은 물건을 팔지 않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등을 돌리고, 카페 주인은 갑자기 차갑게 굳는다. 서사는 이 배척을 개인의 죄에 대한 당연한 응보로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남성(기타노)에게는 그에 해당하는 사회적 처벌이 거의 없다는 점을 묵묵히 노출한다. 기타노는 여전히 강단에 서고, 아내 곁에 있으며, 미하마에 찾아올 수 있다. 불륜의 대가는 두 사람에게 동등하지 않다.
이노우에 유미코의 각본은 이 구조를 명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 사회의 도덕 관습을 그대로 내면화한 채, 그 안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소진되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것이 이 영화의 한계인 동시에 미덕이다. 판단하지 않는 카메라가 때로 판단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 드라마 전편을 보고 두 사람의 결말이 궁금한 분
- 아름다운 영상미와 절제된 멜로드라마를 선호하는 분
- 새드 엔딩에 강하고 여운을 즐기는 분
- 우에토 아야 혹은 사이토 타쿠미 팬
- 전편 드라마를 보지 않은 분 (감정 진입이 어려움)
- 불륜 소재 자체가 불편한 분
- 해피 엔딩 멜로를 기대하는 분
-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드라마를 선호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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