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 리뷰 — 아무 일도 없는 일주일이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총도 없고, 반전도 없고, 눈물의 대화도 없다. 버스 운전사 패터슨은 매일 아침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23번 버스를 몰고, 점심에 폭포 앞 벤치에서 시를 쓰고, 저녁에 개를 산책시키고,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잠든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가만히 있고 싶었다. 무언가를 하기가 아까웠다. 짐 자무쉬의 패터슨이 남기는 건 그런 여운이다. 사건 없는 일주일이, 왜 이렇게 오래 남을까.
아담 드라이버가 이 역할을 한다는 게 처음엔 이상했다. 카이로 렌과 버스 운전사 시인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으니까.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 이 역할을 드라이버 말고 누가 했을까, 싶어진다.
패터슨 줄거리 —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딱 하나의 균열
영화는 월요일에서 시작해 다음 월요일에 끝난다. 일곱 개의 챕터, 일곱 개의 거의 같은 하루. 패터슨은 매일 아침 6시 10분쯤 눈을 뜨고, 아내 로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시리얼을 먹고, 유니폼을 입고 차고지로 간다. 23번 버스를 몰며 승객들의 대화를 듣고, 점심 시간에 그레이트 폭포 앞 벤치에 앉아 비밀 노트에 시를 쓴다. 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고, 불독 마빈을 산책시키고, 바에서 맥주 한 잔. 그리고 잠든다.
이 영화에서 패터슨이 원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 무언가를 '이루려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대한 잘 보려고 한다 — 버스 승객들의 대화, 창밖 풍경, 성냥갑, 아내의 새 기타. 영화의 갈등도 그 맥락 안에서만 생긴다. 어느 밤 바에서 취한 남자가 총을 꺼내드는 장면이 있고, 주말에는 마빈이 패터슨의 시 노트를 전부 찢어버린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아내 로라는 패터슨과 정반대 방향의 인물이다. 매일 새로운 꿈을 꾼다. 흑백 체크 무늬로 집 안 모든 것을 장식하고, 컵케이크를 구워 시장에 내다 팔고, 컨트리 기타를 독학으로 배운다. 패터슨이 일상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로라는 일상을 발명하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마찰 없이 공존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조용한 주제다.
짐 자무쉬가 이렇게 쉬운 것을 어떻게 이렇게 단단하게 만드나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형식이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패터슨이 쓰는 시처럼 — 자무쉬의 연출도 일상의 세부를 천천히, 반복적으로, 그러나 매번 조금씩 다르게 쌓아 올린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행동. 그런데 카메라가 담는 각도는 매일 조금씩 다르다. 프레더릭 엘메스의 촬영은 이 도시의 낡고 평범한 벽돌 건물과 오래된 간판들을 마치 고요한 정물화처럼 담아낸다.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거의 논할 거리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녹아있다. '연기를 한다'는 인상이 없다. 버스 핸들을 잡는 손, 노트에 펜을 올리는 순간, 마빈을 데리고 걸을 때의 보폭 — 이것들이 전부 이 인물의 내면이다. 대사 없이 듣는 연기, 보는 연기가 이렇게 설득력 있기 어렵다.
영화 안에서 실제로 낭독되는 시들은 미국 시인 론 패짓(Ron Padgett)이 쓴 것이다. 자무쉬는 이 시들을 화면 위에 직접 올려 관객이 읽게 한다. 시의 내용은 간단하다 — 성냥, 우산, 아침 식사. 그런데 그것들이 화면 위에 글자로 얹히는 순간, 패터슨의 시선이 관객의 시선이 된다. 일상이 시가 되는 메커니즘을 자무쉬는 설명하지 않고 그냥 보여준다.
이 영화가 그냥 조용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유머가 있다. 로라의 무한한 새 프로젝트들, 쌍둥이들이 화면 곳곳에 계속 나타나는 장치, 마빈의 불독 표정. 자무쉬는 이 영화를 "현대 액션 영화의 해독제로 만들었다"고 칸에서 말했는데, 그 말이 정확하다. 피로한 과잉 없이, 이렇게 충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이 점에서 아쉬운 면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맞지 않는 이유
가장 솔직한 단점은 — 이 영화는 이미 같은 감수성의 관객을 향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자무쉬는 처음부터 이 영화가 좁은 관객층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것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 결과물은 완성도 높은 작품이지만, 일상의 느린 리듬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118분이 꽤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로라 캐릭터에 대한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 그녀의 창작 욕구는 생동감 있게 그려지지만, 그녀가 실제로 '무언가를 이루는' 장면 — 컵케이크를 다 파는 장면 포함 — 이 패터슨의 일상을 배경으로만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 로라 자신의 내면은 조금 더 탐구될 여지가 있었다.
또한 IMDb 관객 점수(7.3)와 RT 전문가 점수(96%)의 격차가 이 영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비평가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높이 평가하지만, 일반 관객 반응은 엇갈린다. "아무것도 안 일어난다"는 불만은 예상 가능한 반응이고, 그것이 이 영화의 결함이 아니라 전제라는 것을 미리 알고 들어가야 한다.
- 형식이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는 연출 — 영화 자체가 한 편의 시
- 아담 드라이버의 말 없는 연기, 과묵한 충만감
- 프레더릭 엘메스의 촬영 — 평범한 도시를 정물화처럼
- 반복과 변주의 리듬에서 오는 조용한 긴장감
- 영화 안에 시가 직접 쓰여지는 장치의 아름다움
- 처음부터 좁은 관객을 전제하고 만든 작품 — 진입 장벽이 높다
- 로라 캐릭터의 내면이 더 탐구될 여지가 있었다
- 118분이 느리게 느껴지는 구간이 분명 있다
- 기대했던 사건이나 전환점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실망감
장단점 카드를 쓰면서 단점 칸을 채우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의 '느린 호흡'은 결함이 아니라 방법론이니까. 그래도 이 카드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치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솔직하게 쓰는 게 맞다.
패터슨 총평 — 일상을 시로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위한 영화
짐 자무쉬는 이 영화에서 단 하나의 질문을 한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아름다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118분 동안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답한다. 그렇다고.
패터슨은 시를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아내가 복사본을 만들라고 해도, 출판을 권해도, 거절한다. 그에게 시는 공개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이 시가 되는 것이다 — 성냥갑, 버스 핸들, 창밖 빗소리. 이것이 이 영화가 예술 창작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발표가 아니라 지각(知覺)의 문제로.
자무쉬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세상의 모든 예술가에 대한 헌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조금 더 좁히고 싶다 — 이건 유명하지 않은 예술가들에 대한 헌사다. 버스를 몰면서 노트에 시를 쓰는 사람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계속 쓰는 사람들, 창작을 '생계'와 별개로 유지하는 사람들. 패터슨은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나한테 이 영화는 8.2점이지만, 기억 속에서는 9점짜리처럼 작동한다. 다시 봐도 새로운 디테일이 보이는 영화다 — 배지에 '재관람 권장'을 달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이 영화 자체가 패터슨이 쓰는 시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졌다
자무쉬는 이 영화를 7개의 챕터(월~일)로 나누고, 각 챕터를 거의 같은 구조로 반복한다. 기상, 출근, 버스, 점심, 퇴근, 저녁, 바, 취침. 이 반복은 지루함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운율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패터슨이 매일 새로 쓰는 시가 어제의 시와 같은 재료를 쓰지만 다른 시가 되듯, 영화의 각 챕터도 같은 틀 안에서 조금씩 다른 것을 포착한다. 형식이 내용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된다.
이 구조의 핵심은 마빈이 시 노트를 찢는 장면에 있다. 이것은 이 영화 유일의 '사건'이지만, 자무쉬는 이것을 드라마틱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패터슨은 울지 않는다.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빈 노트를 펼친다. 이 장면이 말하는 건 창작물의 소멸이 창작 행위 자체를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텅 빈 페이지가 오히려 가장 많은 가능성을 담는다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일본인 시인이 패터슨에게 건네는 빈 노트 — 그게 이 영화의 결론이다.
자무쉬의 영화적 계보에서 이 작품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오즈처럼 카메라는 낮은 위치에서 일상을 관찰하고, 갈등보다 일상의 리듬에 집중한다. 그러나 오즈의 영화가 가족과 세대의 이별을 다루는 데 비해, 패터슨은 이별도 갈등도 없다. 단지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답다는 것만 있다. 그것이 짐 자무쉬가 오즈에게 빚을 갚는 방식이다.
- 일상의 작은 것들을 글로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 분
- 아트하우스 영화를 즐기고 짐 자무쉬에 관심이 있는 분
- 빠른 전개보다 분위기와 여운을 중시하는 분
- 아담 드라이버의 조용한 연기를 경험하고 싶은 분
- 명확한 사건 전개와 결말 해소를 기대하는 분
- 2시간 영화에서 긴장감과 자극을 원하는 분
- 로맨스나 갈등 해소가 없는 영화가 답답한 분
- 아트하우스 장르가 아직 낯선 분 (입문작으로는 비추천)
영화 마지막에 일본인 시인이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건넨다. 이것이 전부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머문다 — 텅 빈 페이지야말로 가장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
혹시 이 영화 보셨다면 — 어느 장면에서 가장 오래 멈추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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