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키 블라인더스 리뷰 — 킬리언 머피가 만들어낸 영국 갱스터 드라마의 정점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기 전, 킬리언 머피에게는 이미 이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BBC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6개 시즌, 총 36화로 방영된 영국 범죄 시대극으로, 1차 세계대전 직후 버밍엄을 배경으로 쉘비 가문이 이끄는 갱단의 흥망을 그립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전 시즌을 볼 수 있고, 2026년에는 속편 영화 《The Immortal Man》도 예정되어 있어요.
줄거리 — 면도날을 모자에 꽂은 남자, 버밍엄을 손에 넣다
1919년, 전쟁이 끝난 영국 버밍엄의 빈민가 스몰히스. 집시 혈통의 쉘비 가문이 이끄는 갱단 '피키 블라인더스'는 마권 도박으로 근근이 먹고삽니다. 가문의 둘째이자 실질적 두뇌인 토마스 쉘비(킬리언 머피)는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은 채 냉혹하고 계산적인 인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가문을 런던의 상류 범죄 조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어요.
시즌 1은 군용 무기 탈취 사건을 계기로 벨파스트 형사 캠벨의 추적이 시작되고, 그레이스라는 수수께끼 여성과의 얽힘이 더해지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후 시즌마다 배경 연도가 전진하면서 쉘비 가문의 적은 런던 갱단에서 IRA, 이탈리아 마피아, 파시즘 세력까지 점점 커집니다.
왜 이 드라마가 전설이 됐는가
첫째는 킬리언 머피입니다. 토마스 쉘비는 단순한 갱 보스가 아니에요. 야망과 냉혹함 뒤에 전쟁 PTSD와 생존 죄책감을 품고 있는 인물인데, 머피는 이 모든 층을 얼굴 하나로 소화합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만으로도 다음 수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불안해지는 경험 — 그게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둘째는 스타일입니다. 1920년대 버밍엄의 석탄 연기, 공장 굴뚝, 낡은 펍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영상은 놀랍도록 현대적이에요. 닉 케이브 & 더 배드 시즈의 "Red Right Hand"로 시작하는 오프닝부터 매 에피소드마다 삽입되는 아나크로니즘 음악들 — 시대극인데 록 음악이 흐르는 이 조합이 처음엔 낯설다가 금방 이 드라마만의 언어가 됩니다.
셋째는 가족 서사입니다. 토마스의 형 아서, 고모 폴리(헬렌 매크로리), 여동생 에이다까지, 쉘비 가문 각각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갖습니다. 범죄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보호하고 또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가족극이기도 해요.
아쉬운 점
시즌 5·6는 팬들 사이에서도 평이 갈립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시즌 6 제작에 차질이 생겼고,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서사가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있어요. 헬렌 매크로리의 별세로 폴리라는 핵심 캐릭터를 잃은 것도 시즌 6의 아쉬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버밍엄 사투리(브럼 악센트)는 영어 원어민에게도 낯설 만큼 독특해서, 자막 없이 보기 어렵다는 분들도 많아요.
- 킬리언 머피의 연기 — 토마스 쉘비는 TV 역사상 손꼽히는 안티히어로
- 스타일리시한 영상미 + 아나크로니즘 OST의 완벽한 조합
- 시즌마다 스케일이 커지는 촘촘한 서사 구조 (시즌 1~4)
- 헬렌 매크로리·폴 앤더슨 등 앙상블 배우진 전원 명품
- BAFTA 수상, IMDB 8.8 — 비평·대중 모두 인정한 작품
- 시즌 5·6의 완성도가 초반 시즌 대비 다소 하락
- 시즌 6, 코로나19 영향으로 급하게 마무리된 결말
- 버밍엄 사투리가 강해 자막 없이 시청 어려움
- 영국 역사 배경(IRA, 처칠, 파시즘 등) 모르면 일부 문맥 파악 어려움
- 후반부 토마스 캐릭터의 무게감이 다소 과해지는 구간 존재
비슷한 작품을 찾는다면
《보드워크 엠파이어》(Boardwalk Empire)가 가장 가깝습니다. 192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 갱단 이야기로, 규모와 정교함에서 피키 블라인더스와 맞먹어요. 더 짧게 보고 싶다면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보다는 한국 갱스터 시대극인 《야인시대》나 《모범택시》 같은 것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킬리언 머피를 오펜하이머에서 처음 만났다면, 이 드라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에요.
총평
후반 시즌의 아쉬움이 있다고 해도, 시즌 1~4만으로 이미 TV 드라마 역사에 남을 걸작입니다. 킬리언 머피가 오펜하이머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훨씬 전, 이 드라마는 그의 이름을 이미 전설로 만들었어요.
토마스 쉘비는 왜 이길 수 없는 게임을 계속하는가
《피키 블라인더스》는 갱스터 성공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쟁이 한 인간에게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토마스 쉘비는 1차 대전의 프랑스 참호에서 살아돌아왔지만, 살아남은 것이 오히려 그를 망가뜨렸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 그 역설이 이 캐릭터를 움직이는 엔진이에요.
영국 계급 서사도 중요합니다. 집시 혈통에 빈민가 출신인 쉘비 가문이 귀족과 정치인들과 테이블에 앉게 되는 과정은, 단순한 출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스템 바깥에서 태어난 자가 시스템 안으로 들어갈 때 무엇을 잃는가 — 드라마는 그 대가를 계속 청구합니다. 권력이 커질수록 토마스가 더 고립되고 더 황폐해지는 것이 그 답입니다.
이 드라마가 2010년대 영국 드라마의 지형을 바꾼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셜록》이 캐릭터의 지성을 스타일로 만들었다면, 《피키 블라인더스》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개인의 몸으로 체화하는 방식을 개척했어요. 시대극이면서 록 음악이 흐르고, 갱스터물이면서 심리극이 되는 이 이중성이 이 드라마가 10년이 지나도 새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 《오펜하이머》로 킬리언 머피를 알게 된 분 — 그의 진짜 대표작이 여기 있음
- 《대부》·《보드워크 엠파이어》류 갱스터 가족 서사를 좋아하는 분
- 시대극이지만 트렌디한 OST·영상미를 원하는 분
- 짧은 에피소드(시즌당 6화)로 속도감 있게 정주행하고 싶은 분
- 해피엔딩과 권선징악이 중요한 분 — 이 드라마에 그런 것 없음
- 영국 역사·지명에 전혀 관심 없는 분 (IRA, 처칠, 파시즘 등 맥락 나옴)
- 완벽한 결말을 원하는 분 — 시즌 6 마무리가 아쉽다는 의견 많음
- 폭력 묘사에 민감한 분 (갱스터물 수준의 폭력 장면 존재)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시즌 1 첫 화, "Red Right Hand"가 흐르는 순간 이미 당신은 빠져든 거예요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