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유풍적지방 리뷰 — 더우반 8.8점, 위로가 필요할 때 틀어야 할 중국 드라마
퇴사하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면, <거유풍적지방(去有风的地方 / Meet Yourself)>은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다. 2023년 1월 후난TV에서 방영된 이 40부작 힐링 로맨스는 더우반 8.8점이라는 이례적인 고점을 유지하며 "치유 드라마의 교과서"로 불리게 됐다. 류이페이(刘亦菲)의 TV 드라마 복귀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윈난성 다리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번아웃된 한 여자가 천천히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이야기를 담았다.
줄거리 — 달력의 내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
쉬훙도우(류이페이)는 3년간 휴가 한 번 못 쓴 베이징 호텔 매니저다. 냉장고 안 음식은 항상 유통기한이 지나 있고, 친구와의 약속은 매번 "다음에"로 미뤄진다. 그 "다음에"를 기다리던 단짝 친구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훙도우는 처음으로 멈춘다. 친구가 늘 가고 싶다던 윈난 다리.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훙도우는 짐을 싼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윈먀오 마을의 '바람소리 민박(有风小院)'. 그곳에서 그녀는 셰즈야오(리센)를 만난다.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관광 사업을 일으키려는 남자. 처음에는 명확한 귀환 날짜가 있던 훙도우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셰즈야오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자신이 잃었던 것들을 다시 찾기 시작한다. 드라마는 서두르지 않는다. 두 사람의 감정도, 마을의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이 드라마에는 악당이 없다. 갈등도 막장도 없다. 대신 바이(白)족의 전통 공예, 에르하이 호수의 석양, 창산의 운무, 마을 어른들의 잔잔한 이야기들이 화면을 채운다. 보는 사람이 함께 쉬게 되는 드라마다.
장점 — 슬로우 번의 예술, 윈난이라는 세계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배경이다. 윈난성 다리는 단순한 촬영지가 아니라 드라마 그 자체다. 창산과 에르하이를 배경으로 한 촬영은 마치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바이족의 전통 의상과 수공예 장면들은 "이 마을에 실제로 살고 싶다"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방영 이후 다리 지역 관광객이 폭증했다는 사실이 이 드라마의 영상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말해준다.
류이페이의 연기는 이 드라마에서 한 단계 성숙했다. 그녀 특유의 고요한 존재감이 번아웃된 훙도우 캐릭터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억지로 밝아지거나 갑자기 변하지 않고, 마을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리센의 셰즈야오 역시 이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매력으로 설득력 있다. 두 사람 사이의 슬로우 번 로맨스는 감정의 흐름이 억지스럽지 않아 오히려 더 오래 여운이 남는다.
조연 캐릭터들도 훌륭하다. 셰 할머니(우옌수)의 존재는 이 드라마가 단순한 로맨스 드라마가 아님을 증명한다. 마을 어르신들, 목공 장인, 식당 아주머니 등 나이 든 배우들에게 충분한 화면 시간이 주어진 것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OST 역시 드라마의 감성을 충실히 받쳐준다. 바람 소리와 섞이는 포크 기타 선율은 오랫동안 귀에 남는다.
아쉬운 점
40부작이라는 길이는 분명 부담이다. 전반부는 윈난의 풍경과 마을 소개에 충실하지만, 중반 이후 서브 캐릭터들의 로맨스 라인 일부가 늘어지는 느낌을 준다. 특히 일부 조연들의 연애 서사는 본편의 잔잔한 톤과 어울리지 않아 속도감이 떨어지게 만든다. 또한 드라마가 지나치게 긍정적인 시선으로만 시골 생활을 그린다는 점도 지적된다. 도시와 시골의 현실적인 갈등보다 아름다운 면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어, 일부에게는 "여행 광고처럼 느껴진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 윈난 다리의 압도적인 촬영 — 매 화면이 여행 사진 수준
- 류이페이의 성숙하고 자연스러운 연기, 역대 최고의 현대극
- 억지 없이 쌓이는 슬로우 번 로맨스 — 설레임의 교과서
- 악당·막장 없이 평범한 일상만으로 만든 몰입감
- 셰 할머니 등 노년 조연들에게 주어진 풍성한 서사
- 바이족 전통문화 자연스럽게 녹여낸 스토리텔링
- 40부작의 길이 — 중반 일부 서브 라인이 늘어짐
- 시골 생활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그린다는 지적
- 일부 조연 로맨스가 본편 톤과 불일치
- 급한 시청자에게는 느린 전개가 인내를 요구함
총평
<거유풍적지방>은 치유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뭔가를 포기한 사람들, 달력의 내일을 조금 더 천천히 넘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40시간짜리 위로가 된다.
번아웃의 시대가 만들어낸 드라마 — '힐링'이 장르가 된 이유
<거유풍적지방>이 2023년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MZ세대 사이에서 '탕핑(躺平,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한다)'과 '루이더(润, 도망친다)'가 유행어가 된 시대적 맥락이 있다. 이 드라마는 퇴사와 도피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쉬훙도우는 윈난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마을에 기여하면서 회복한다. 도망이 아닌 재정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가 도시 청년들의 피로감을 달래면서 동시에 농촌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적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는 점이다. 셰즈야오가 고향으로 돌아와 관광 사업을 이끄는 구조, 바이족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인물들, 마을 청년들의 귀향 서사는 모두 그 맥락 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선전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인물들의 감정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나 <나의 아저씨>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느린 속도, 공동체의 온기, 도시에서 온 주인공의 회복. 하지만 <거유풍적지방>이 그 계열의 드라마들과 다른 점은 회복의 과정이 로맨스보다 먼저 온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기 전에 훙도우는 이미 조금 나아져 있다. 그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성실한 선택이다.
- 번아웃이 왔거나 번아웃이 무엇인지 아는 분
- 갯마을 차차차, 나의 아저씨 류의 힐링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
- 영상미 보면서 간접 여행하고 싶은 분
- 슬로우 번 로맨스의 설레임을 즐기는 분
- 중국 소수민족 문화에 관심 있는 분
- 막장·갈등·반전 위주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분
- 40부작이 부담스러운 분
- 빠른 전개와 높은 밀도의 스토리를 원하는 분
- 첫 화부터 강한 훅이 없으면 지루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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