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리뷰 — 금마장 여우주연상 공동 수상, 중국 청춘 영화의 걸작
2016년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七月与安生). 두 여성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원작과 달리, 한국 개봉 제목은 우정과 사랑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처럼 들린다. 하지만 증국상 감독은 그 어떤 이름표도 붙이지 않는다. 13살에 만나 27살까지 함께하고 엇갈린 두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 끝내 닿지 못하는 간극에 대해 말한다. 대만 금마장 영화제 역대 최초 공동 여우주연상이라는 기록이 그 연기의 밀도를 증명한다.
열셋에 만나 스물일곱까지 — 줄거리
2001년, 중국 소도시의 한 중학교. 교련 시간에 얼차려를 나란히 받던 두 소녀가 처음 만난다. 이안생(주동우)은 거칠고 즉흥적이며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임칠월(마사순)은 반듯하고 조용하며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정반대인 둘이 어떻게 이토록 가까워졌는지 이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칠월의 남자친구가 된 소가명이 두 사람 사이에 들어온다. 안생은 가명에게 미묘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방해가 될 것을 알아 고향을 떠난다. 그 후 두 사람은 수년간 엽서로만 연락하며 서로 다른 삶을 산다. 칠월은 은행에 취직하고, 안생은 베이징을 떠돌며 밑바닥 일을 전전한다. 그러다 재회하고, 오랜 침묵 속에 쌓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진다.
영화의 서사는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후반부에는 이야기의 층위 자체가 뒤집히는 구조가 등장한다. "칠월과 안생 중 누가 더 자유로웠는가"라는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가 잘하는 것들
단연 두 배우의 연기다. 주동우와 마사순은 13살부터 27살까지의 시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몸 전체로 표현해낸다. 주동우가 안생의 자유와 그 이면의 공허함을 야성적인 에너지로 보여준다면, 마사순은 칠월의 억제된 욕망과 질투와 사랑을 표정 하나, 시선 하나로 전달한다. 금마장이 이 둘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영화의 시각 언어도 탁월하다. 증국상 감독은 중국 소도시의 질감 — 습하고 낡은 골목, 번진 편의점 불빛, 엽서에 적힌 손글씨 — 을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두 소녀의 감정은 대사보다 이 질감들 속에서 더 정확하게 전달된다.
후반부의 구조적 반전도 이 영화가 단순한 청춘 멜로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야기가 어디서 오고 누가 쓴 것인지가 밝혀지는 순간, 칠월과 안생의 관계 전체가 다시 읽힌다. 한 번 보고 두 번 생각하게 되는 영화다.
아쉬운 점
11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두 사람의 14년을 담기에는 촉박하다. 특히 1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넘어가는 구간의 감정적 전환이 다소 빠르게 처리되는 느낌이 있다. 삼각관계의 외피가 두 여성의 관계를 가리는 지점도 일부 존재하며, 신파적 장치에 기댄 후반부 전개가 도드라지게 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그 통속성이 영화의 약점인지, 이 이야기를 압축하기 위한 필요악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 주동우·마사순의 금마장급 연기 — 두 배우 모두 경력 대표작
- 중국 소도시의 질감을 살린 감각적인 영상미
- 후반부 서사 구조의 반전 —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구성
- 우정/사랑의 경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 섬세한 연출
- 엽서·음악·빛 등 소품을 통한 감정 전달이 탁월
- 110분에 14년을 담기엔 시간 경과 처리가 성글다
- 후반부 신파적 장치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음
- 삼각관계 구도가 두 여성 서사를 부분적으로 가림
- 중반 이후 전개가 클리셰 멜로 공식에 일부 기댐
총평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두 여성의 14년을 110분으로 압축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 — 서로를 향한 감정의 복잡함 — 을 잃지 않는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동경인지 질투인지 영화는 끝까지 명확한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한다. 그 모호함이 이 영화를 단순한 청춘 멜로가 아닌, 오래 남는 작품으로 만드는 힘이다.
칠월과 안생 — 그 둘은 소울메이트가 아니었다. 영원히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평생 서로를 그리워한 두 사람이었다.
이름을 붙이지 않는 용기 — 원제 '칠월과 안생'이 가진 의미
한국 제목 "소울메이트"는 이 영화를 아름답게 포장하지만, 동시에 영화가 가장 공들여 만든 균열을 지운다. 원제 七月与安生(칠월과 안생)에는 어떤 감정적 수사도 없다. 두 사람의 이름만 있다. 이 차이가 영화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증국상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에 끝까지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우정인가, 사랑인가, 동경인가, 질투인가 — 관객이 원하는 어떤 단어도 들어맞지만, 어떤 단어도 충분하지 않다.
영화의 가장 영리한 구조는 칠월과 안생이 결국 서로의 삶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자유를 찾아 떠돌던 안생은 나중에 안정을 원하게 되고, 안정만을 추구하던 칠월은 언젠가부터 안생이 살던 삶에 손을 뻗는다. 이것은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서로를 그토록 동경한 이유가 상대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졌기 때문이었다면,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의 결핍을 사랑한 것이다.
후반부 메타픽션적 구조 — 누군가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 — 는 이 관계의 마지막 진실을 드러낸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가장 절박한 방법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울메이트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관계가 아니라, 끝내 닿지 못한 채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
- 주동우라는 배우에 관심이 생긴 분
- 여성 성장 서사, 여성 우정 영화를 좋아하는 분
-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 영화를 선호하는 분
- 한국 리메이크 소울메이트를 봤고 원작이 궁금한 분
- 신파적 감정선이 불편한 분
- 명확한 결말과 정리된 서사를 원하는 분
- 삼각관계 구도 자체에 피로감이 있는 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