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펭귄 리뷰 — 콜린 패럴의 변신, DC판 소프라노스가 탄생했다
DC 히어로물이 지쳐갈 즈음, HBO가 전혀 다른 방향의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2024년 9월 공개된 "더 펭귄(The Penguin)"은 2022년 영화 <더 배트맨>의 스핀오프로, 배트맨이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 순수한 빌런 주인공 드라마입니다. 콜린 패럴이 특수분장으로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고담의 권력 암투를 그려낸 이 작품, 'DC판 소프라노스'라는 극찬이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줄거리 — 고담의 권좌를 노리는 절름발이 건달의 야망
영화 <더 배트맨>에서 카르민 팔코네가 죽고 대홍수로 고담이 혼돈에 빠진 직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팔코네 패밀리의 말단이었던 오스왈드 '오즈' 코블팟, 일명 펭귄(콜린 패럴)은 이 권력 공백을 기회로 봅니다. 마로니 패밀리와 손잡고 고담 지하세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려는 오즈. 하지만 그의 앞에 예상치 못한 강적이 나타납니다. 팔코네의 딸 소피아(크리스틴 밀리오티)가 아캄 정신병원에서 출소해 가문의 복수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오즈와 소피아 두 인물의 권력 다툼을 중심으로, 고담 뒷골목의 냉혹한 생존 법칙을 그려냅니다. 총격전과 배신과 회유가 이어지는 가운데, 오즈가 어떻게 '펭귄'이라는 존재로 완성되어 가는지 — 빌런의 탄생 서사를 치밀하게 쌓아올립니다.
콜린 패럴의 완전한 변신, 그리고 뜻밖의 조연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화제는 역시 콜린 패럴입니다. 수십 시간의 특수분장으로 외모 자체가 바뀐 것은 물론, 뉴욕 토박이 사투리와 특유의 절뚝이는 걸음걸이까지 — 콜린 패럴이라는 사실을 알고 봐도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히스 레저의 조커에 비견된다는 평가가 과하지 않을 만큼, 캐릭터와 배우가 완전히 하나가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보면, 오히려 소피아 팔코네 역의 크리스틴 밀리오티가 더 강렬하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캄 정신병원에서의 세월이 어떻게 그녀를 만들었는지를 담은 4화는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높은 IMDb 개별 평점(9.6점)을 기록했어요. 주인공은 펭귄인데, 소피아를 응원하게 되는 묘한 경험 — 이것이 이 드라마의 숨겨진 매력입니다.
촬영과 미장센도 빼놓을 수 없어요. 고담의 어두운 골목과 빗물에 젖은 도로, 네온사인이 반사되는 누아르 분위기가 영화 이상의 퀄리티로 구현됩니다. 더 배트맨의 감독 맷 리브스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영화의 세계관과 톤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에요.
아쉬운 점
더 배트맨을 보지 않은 시청자에게는 배경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팔코네, 마로니, 리들러 등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영화에서 이어지는 만큼, 선행 감상을 추천합니다. 8부작이라는 분량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있어요. 워낙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다 보니, 끝나는 게 너무 빠르게 느껴집니다. 또 빌런 주인공을 응원해야 하는 구조가 처음에는 다소 낯설 수 있어요. 오즈는 분명 악인이고, 그 악인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는 과정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 콜린 패럴의 완전한 변신 — 히스 레저의 조커에 비견되는 캐릭터 완성도
- 소피아 팔코네(크리스틴 밀리오티)의 서사가 주인공을 위협할 만큼 강렬
- DC 히어로물 피로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순수 누아르 범죄 드라마
- 더 배트맨의 영상 톤을 드라마 수준에서 완벽하게 구현한 미장센
- 빌런의 탄생을 세밀하게 쌓아올리는 캐릭터 서사의 밀도
- 더 배트맨 미감상 시 배경 이해가 다소 부족할 수 있음
- 8부작이라는 분량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 빨리 끝남
- 악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야 하는 구조가 처음엔 낯설 수 있음
- 속편 여부 불투명 — 리미티드 시리즈로 기획된 완결작
더 배트맨 없이도 볼 수 있을까?
가능은 하지만 더 배트맨을 먼저 보고 오는 걸 강하게 권장합니다. 더 배트맨은 2022년 영화로 국내에서 넷플릭스 등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약 3시간짜리 장편이지만, 더 펭귄을 훨씬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찾는다면 역시 HBO의 <더 와이어>나 <소프라노스> 같은 범죄 드라마 팬들에게 특히 잘 맞을 작품입니다.
총평
DC 피로감이 있는 분에게도, 범죄 드라마 팬에게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콜린 패럴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되고, 소피아 팔코네라는 캐릭터가 그 이유를 두 배로 만들어 줍니다.
- 소프라노스, 더 와이어 같은 범죄 조직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 DC 히어로물은 지쳤지만 고담 세계관은 좋아한다면
- 배우의 완전한 변신 연기에 매료되는 분
- 누아르 분위기와 어두운 영상미를 선호한다면
- 배트맨·슈퍼히어로 액션을 기대한다면 (배트맨은 거의 등장 안 함)
- 더 배트맨(2022)을 아직 안 봤다면 (먼저 영화 감상 권장)
- 악인을 주인공으로 응원하는 구조 자체가 불편한 분
- 밝고 가벼운 오락물을 원하는 분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DC 피로감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진짜 어른을 위한 범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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