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 리뷰 — 에이미 슈머 로맨틱 코미디, 얼마나 웃길까?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자가 하던 역할을 여자가 하면 어떻게 될까.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는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에이미 슈머가 직접 쓴 각본, 직접 주연을 맡은 이 영화의 에이미는 술을 마시고, 자유롭게 자고, 진지한 관계를 거부한다. 할리우드가 오랫동안 남성 주인공에게 허락해온 것들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 설정으로 무엇을 했을까.

미국 영화
Trainwreck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
Trainwreck · 2015
장르
로맨틱 코미디 · 드라마
개봉
2015 · 유니버설 픽처스
러닝타임
125분
각본
에이미 슈머 (자전적 각본)
주연
에이미 슈머 · 빌 헤이더 · 브리 라슨 · 르브론 제임스
감독
저드 애퍼타우
국내 시청 왓챠 웨이브
외부 평점
IMDb 6.2
RT 평론가 84%
Metacritic 75
다음 6.5
연기
1
에이미 타운젠드 에이미 슈머 (Amy Schumer)
뉴욕의 매거진 에디터. 어릴 때 아버지에게 "일부일처제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자유로운 연애를 신조로 삼지만 실은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 에이미 슈머가 자신의 실제 과거를 토대로 쓴 자전적 캐릭터다.
2
애런 코너스 빌 헤이더 (Bill Hader)
성공한 스포츠 정형외과 전문의. 에이미의 취재 대상이 되면서 두 사람이 얽힌다. 잘생겼고 다정하고 진지한 — 롬콤 전통의 '완벽한 남자' 역할을 빌 헤이더가 맡아 특유의 루저 감성으로 풀어낸다. 슈머와의 케미가 영화의 핵심.
3
르브론 제임스 LeBron James (본인 역)
NBA 슈퍼스타가 본인으로 등장해 애런의 절친 역할을 맡는다. 검소함을 강조하고, 영화 내내 애런과 에이미의 관계를 걱정하는 든든한 친구로 나온다. 뉴요커 평론가가 "현역 프로 농구 선수의 역대 최고 연기"라고 평했을 정도로 타이밍이 좋다.
4
브리 라슨 (Brie Larson)
에이미의 동생. 평범한 교외 생활을 하는 인물로, 에이미가 내심 무시하는 대상이자 영화 후반부 에이미의 변화를 이끄는 거울 역할. 브리 라슨이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빌 헤이더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훨씬 피곤했을 것이다. 슈머의 날카로움과 헤이더의 무해함이 균형을 이루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진짜 재미다.

줄거리 — 자유연애주의자가 사랑에 빠지면

에이미는 뉴욕의 남성지 스타일 잡지에서 일하며 일상적으로 여러 남자와 교제하는 삶을 산다. "맥심" 같은 잡지에 쓰리섬 관련 기사를 쓰고, 스티브(존 시나)라는 남자를 만나지만 진지한 감정은 거부한다. 아버지는 양로원에 있고, 동생 킴은 교외에서 평범한 가족을 꾸리며 산다. 에이미는 그런 삶을 답답하게 여긴다.

취재 대상으로 스포츠 의사 애런을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평소처럼 하룻밤을 보내려 했지만, 애런이 진지하게 관계를 원한다고 해오고 에이미는 당황한다. 취재를 이어가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에이미의 자기파괴적 습관들이 관계를 위협한다. 회사 파티에서 미성년자 인턴과 엮여 해고되고, 관계는 무너진다.

영화는 에이미가 반성하고 변하면서 애런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치어리더복을 입고 춤을 추는 마무리는 롬콤 역사상 가장 전통적인 대화해 장면 중 하나다. 전복을 선언했던 영화가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막을 내린다.

장점 — 슈머의 코미디는 진짜다

에이미 슈머의 스탠드업 코미디 감각이 스크린에서 그대로 살아있다. 신체 이미지, 섹스, 여성성에 대한 그녀의 농담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다른 할리우드 코미디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솔직하다. 같은 장면이 남자 주인공이었다면 아무 문제 없이 웃어넘겼을 것들을 여자가 하니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포착하려는 지점이다.

르브론 제임스의 등장은 이 영화의 숨겨진 선물이다. 검소함을 강조하고 애런의 연애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그의 모습은, 농구 슈퍼스타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존 시나도 근육질 몸과 감수성 넘치는 성격의 간극으로 초반부 웃음을 담당한다.

슈머와 헤이더의 케미는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대부분 웃기고 따뜻하다. 비슷한 로맨틱 코미디에서 흔히 보이는 억지스러운 설레임보다 실제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색함과 솔직함을 담아낸다. 그 지점이 이 영화가 장르 안에서 갖는 진짜 강점이다.

아쉬운 점 — 125분이 느껴진다

저드 애퍼타우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기서도 반복된다. 125분은 이 이야기에 필요한 것보다 20분쯤 길다. 중반부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 시퀀스는 감정적 무게를 더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코미디의 리듬을 끊어놓는다. 영화 전체의 속도가 그 지점에서 한 번 꺾인다.

그리고 결말이다. 에이미가 치어리더복을 입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춤을 추며 애런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전반부에서 비틀고자 했던 바로 그 장르 공식 안에 다시 들어가는 순간이다. 뉴욕 타임스 평론가가 지적했듯, 슈머의 가장 위험하고 급진적인 작업물과 비교하면 이 영화의 결말은 놀라울 정도로 안전하다. 각본을 직접 쓴 사람이 이 결말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동시에 아쉽다.

+
장점
  • 에이미 슈머의 날것 그대로의 코미디 감각
  • 슈머 + 헤이더의 자연스러운 케미
  • 르브론 제임스의 예상을 뛰어넘는 연기
  • 여성 시점에서 쓴 섹스 코미디라는 신선함
-
아쉬운 점
  • 저드 애퍼타우 특유의 과한 러닝타임
  • 전복을 선언하고 가장 전통적 결말로 안착
  • 중반부 아버지 장례 시퀀스에서 리듬 붕괴
  • 슈머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처음부터 불편

결말이 아쉬웠지만, 솔직히 말하면 르브론 제임스 장면들 때문에라도 볼 가치는 있다. 그냥 같이 웃을 영화를 찾는다면 충분하다.

총평 — 용감한 시작, 안전한 마무리

RT 84%와 IMDb 6.2의 간극이 이 영화를 정확히 설명한다. 평론가들은 에이미 슈머의 목소리가 할리우드에 등장했다는 사건 자체를 높이 평가했고, 일반 관객은 막상 보고 나서 "그냥 그런 로맨틱 코미디"라는 감상을 남겼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이 영화가 제일 잘 하는 건 두 가지다. 에이미 슈머라는 코미디언을 스크린에서 보는 경험, 그리고 빌 헤이더와의 장면들. 나머지 — 결말, 러닝타임, 아버지 서사 — 는 저드 애퍼타우의 전작들과 같은 강점이자 같은 약점이다. 이 영화 이후 슈머는 더 좋은 작품들을 만들었고, 그 작품들이 이 영화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 시작이 여기였고, 그 출발 자체는 의미가 있다.

볼까말까 평점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
3.5
/ 5.0
재미
3.7 중반부 처짐
스토리
3.3 전형적 구조
연기
4.1
영상미
3.0
OST
3.1
몰입도
3.4

연기 점수가 유독 높은데, 사실 그건 거의 르브론 제임스 덕분이다. 이 점수를 보면 내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알 수 있다.

장르론 Analysis

에이미 슈머는 왜 자신이 전복하려 한 결말을 직접 썼을까

롬콤 역사에서 Trainwreck의 위치는 독특하다. 영화는 전통적 롬콤 공식 — 여자가 자신의 문제를 고치고 사랑을 얻는다 — 을 그대로 따르면서, 동시에 그 공식을 비꼬는 척한다. 에이미는 영화 전반부에서 남성 롬콤 주인공의 모든 행동을 한다. 자고, 마시고, 거부한다. 그러나 후반부에 그녀가 하는 일은 정확히 전통적 여성 롬콤 주인공이 해온 것들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구애하고, 그를 되찾는다.

이 구조는 영화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에이미 슈머의 스탠드업에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중 기준이다. 그러나 각본가로서 그녀는 결국 그 이중 기준의 결론 — "여자는 변해야 사랑을 얻는다" — 을 선택했다. 르브론 제임스가 극 중에서 에이미를 응원하는 방식이나, 애런이 에이미에게 보내는 인내심은 이 영화가 얼마나 에이미의 변화를 중심에 두는지 보여준다. 애런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장르의 공식을 완전히 해체하지 못했지만, 그 공식 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고 솔직한 버전을 만들었다. RT 84%는 그 사실에 대한 평가고, IMDb 6.2는 "전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반응이다. 두 점수가 동시에 맞다.

시청 주의
성적 장면 다수 (청불) 음주·약물 소재 가족과 함께 시청 비권장
이 작품, 나한테 맞을까?
O  이런 분께 추천
  • 에이미 슈머 스타일의 코미디가 취향인 분
  • 빌 헤이더 팬 (이 영화에서 꽤 사랑스럽다)
  • 부담 없는 성인 로맨틱 코미디 찾는 분
  • 르브론 제임스가 연기하는 걸 보고 싶은 분
X  이런 분은 패스
  • 에이미 슈머 유머 스타일이 맞지 않는 분
  • 성적 농담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
  • 롬콤 공식을 실제로 해체한 영화를 원하는 분
  • 125분이 길게 느껴지는 분
"
롬콤을 뒤집겠다고 시작해서, 가장 전통적인 롬콤으로 끝난다. 그 아이러니가 이 영화다.
슈머의 코미디는 진짜고, 결말은 아쉽다. 르브론 제임스는 생각보다 훨씬 잘한다.
#에이미슈머 #로맨틱코미디 #빌헤이더 #저드애퍼타우

에이미 슈머가 이 각본을 썼을 때 얼마나 고민했을지 궁금하다. 가장 급진적인 코미디언이 가장 안전한 결말을 선택한 것이 용기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게 본인의 진짜 이야기여서인지.

이 영화 보셨다면 — 결말이 납득됐나요, 아니면 아쉬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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