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썬 후기 — 그때 나는 아버지를 몰랐다
소피는 스물두 살쯤 됐을 때 아버지와 함께 찍은 캠코더 영상을 꺼냈다. 거기에는 열한 살의 자신과 서른 살의 아버지가 있다. 그때 아버지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소피는 그것을 몰랐다. 애프터썬(Aftersun, 2022)은 그 앎의 지연을 필름으로 만든 영화다.
프랭키 코리오는 배우다.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열한 살짜리 아이가 이 정도의 연기를 한다는 것이, 샬롯 웰스가 어떤 감독인지를 말해준다.
1999년 터키, 7일간의 여름
소피와 칼럼이 터키 리조트에 도착한다. 부모는 이혼했고 칼럼은 딸과 일주일을 함께하기 위해 여기 왔다. 두 사람은 수영장에서 놀고, 밤에는 카라오케 바에 가고, 해변을 걷고, 캠코더로 서로를 찍는다. 그것이 전부다. 사건은 없다.
그러나 카메라는 칼럼이 소피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담는다. 밤에 혼자 발코니에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 풀장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이는 순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어?" 라는 소피의 질문에 대답을 멈추는 침묵. 영화는 이것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담는다.
20년 후, 어른이 된 소피가 그 영상을 다시 본다. 영화는 그 두 시간대 — 1999년의 기억과 현재의 소피 — 를 교차한다. 현재의 소피가 채워 넣는 장면들이 있다. 칼럼이 혼자 군중 속에서 춤을 추는 클럽 장면은 기억이 아니라 상상이다. 소피가 그때 아버지 안에 있었던 것을 지금에서야 그려내는 것이다.
몰랐다는 것을 아는 것
이 영화의 핵심은 단순하다 —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모른다. 소피는 칼럼과 일주일을 함께했다. 그 일주일 내내 칼럼은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소피는 그것을 느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20년이 지나서야 그 이해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때 이미 칼럼은 없다. 샬롯 웰스는 이 구조를 35mm 필름과 미니DV 영상의 혼용으로 구현한다. 선명한 35mm는 소피의 기억이, 흔들리는 캠코더 영상은 실제 그 시간의 기록이 된다. 두 포맷의 텍스처 차이가 기억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시각적으로 만든다.
한 씬이 모든 것을 압축한다. 소피가 칼럼에게 무언가를 카라오케로 불러보라고 한다. 칼럼은 "Losing My Religion"을 고른다.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받는다. 그리고 노래를 시작하지 못한다. 소피는 웃으며 대신 부른다. 우리는 칼럼이 왜 노래를 시작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멈춤이 이 영화 전체를 담는다.
- 35mm와 미니DV의 혼용 — 기억과 기록의 텍스처 차이를 시각 언어로 만든 촬영의 정밀함
- 폴 메스칼과 프랭키 코리오의 화학반응 — 아버지와 딸의 애정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현존
- "Losing My Religion" 카라오케 씬과 Under Pressure 댄스 씬 — 각각 이 영화의 핵심을 다른 언어로 말하는 두 장면
- 설명하지 않는 용기 — 칼럼이 무엇과 싸우고 있었는지 영화는 끝까지 직접 말하지 않는다
- 의도적 모호함이 일부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 —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 칼럼의 내면이 거의 열리지 않음 — 소피의 시점으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의도적 한계이지만, 그를 더 알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지 않는다
- 결말 이후 처리해야 할 감정이 크다 —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느낌이 며칠간 지속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아버지가 그 나이에 무엇을 느꼈을지 생각했다. 이 영화는 아버지를 보는 영화가 아니라, 아버지를 처음으로 보게 되는 영화다.
샬롯 웰스가 데뷔작으로 이것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샬롯 웰스의 첫 장편이다.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 없이, 사건 없이, 대화 없이, 노골적인 감정 표현 없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감정적 충격을 만들어낸다. 뉴욕타임스 비평가 A.O. 스콧은 웰스가 "영화의 언어를 거의 재발명하고 있다"고 썼다. 그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영상미 5.0은 이 블로그에서 처음 주는 점수다. 35mm와 미니DV의 혼용이 서사 자체가 되는 촬영을 이보다 다른 점수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억은 편집된다 — 두 가지 필름 포맷이 만드는 이 영화의 인식론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형식적 선택은 두 가지 필름 포맷의 혼용이다. 35mm 영화 필름은 소피가 기억하는 그 여름이다 — 선명하고 아름답고 조금 이상화됐다. 미니DV 캠코더 영상은 그 시간의 실제 기록이다 —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고, 빛이 번진다. 두 포맷이 교차할 때, 관객은 자신이 지금 소피의 기억을 보고 있는지 실제 기록을 보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 구분이 의도적으로 흐릿해지는 순간이 있다. 칼럼이 혼자 군중 속에서 춤을 추는 장면 — 소피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어른 소피가 아버지 내면에 있었을 무언가를 상상으로 채운 것이다. 웰스는 이 장면을 다른 포맷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기억과 상상이 섞인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섞는다. 관객도 소피와 같은 위치에 놓인다 — 무엇이 실제였고 무엇이 채워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이것이 이 영화가 "기억"에 관한 영화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웰스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 자체가 편집된 서사라는 것이다. 소피의 여름은 완전히 기록됐지만, 칼럼의 여름은 그 기록 안에 부분적으로만 담겼다. 20년 후 소피가 보는 것은 기록이지만, 그녀가 이해하는 것은 기억이다. 그 간극이 이 영화다.
- 폴 메스칼의 팬이라면 — 그의 커리어를 정의하는 작품이다
- A24 감성의 조용한 드라마를 즐기는 분 — 미드썸머보다 조용하고, 무니 프로젝트보다 개인적이다
- 부모와의 관계, 기억의 불완전함에 공명할 수 있는 분
- 영화의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는 작품에 관심 있는 분 — 두 포맷의 혼용을 의식하며 보면 더 깊어진다
- 명확한 플롯과 사건 전개를 원하는 분 — 이 영화에는 플롯이 없다
- 부모 정신건강 위기 관련 내용에 현재 민감한 분 — 이 영화는 그 정서를 중심에 둔다
-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파악되지 않으면 답답한 분 — 영화가 끝나도 모호함이 남는다
- 지금 감정적 여유가 없는 분 — 이 영화는 며칠 동안 따라온다
칼럼이 무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영화가 끝나고 오래 남았다. 그 마음 자체가 이 영화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된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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