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후기 —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아담은 12살 때 부모를 잃었다. 그 이후로 30년 동안 한 번도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다 — 말할 부모가 없었으니까.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All of Us Strangers, 2023)는 그 하지 못한 말들을 하기 위해 죽은 부모에게 돌아가는 이야기다. 슬프고, 따뜻하고, 초자연적이고, 치명적이다.
클레어 포이가 아담의 커밍아웃을 듣고 반응하는 씬 — 걱정하면서도 사랑한다는 것이 동시에 있는 그 순간 — 은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이다.
텅 빈 아파트, 황금빛 빛, 그리고 두드림
아담은 런던 외곽의 고층 아파트에 혼자 산다. 건물에는 다른 입주자가 거의 없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노을빛이 이상하게 감각적이다 — 영화는 첫 장면부터 이 공간이 현실과 살짝 어긋나 있음을 빛으로 암시한다. 어느 밤, 이웃 해리가 술을 마시고 아담의 문을 두드린다. 아담은 처음엔 돌려보내지만 이후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가까워진다.
한편 아담은 자신이 자란 런던 교외 집으로 혼자 찾아간다. 거기에 부모가 있다. 죽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30년 전의 나이 그대로. 영화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 아담은 부모와 대화하고, 밥을 먹고, TV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이 게이임을 말한다. 부모는 걱정하고, 상처받고, 결국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대화들은 30년 전에 일어났어야 했다.
두 이야기 — 해리와의 현재, 부모와의 과거(혹은 상상) — 가 교차하며 아담이라는 인물의 고독과 치유를 구성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 영화가 혼자 하는 일
앤드루 헤이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의 과거를 파고들었다고 밝혔다. 아담의 부모와의 장면들은 감독 자신의 유년 시절 집에서 촬영됐다. 이 개인성이 영화의 모든 씬에 스며있다. 이것은 퀴어 경험에 관한 영화이고, 슬픔에 관한 영화이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헤이는 그 어떤 주제도 직접 말하지 않는다. 앤드루 스콧과 폴 메스칼의 화학반응, 클레어 포이와 제이미 벨의 정확한 체온, 그리고 영화의 빛과 공간이 모든 것을 한다.
한계를 말하자면, 결말의 반전이 관객에 따라 과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는 전반부에 충분한 단서를 뿌리지만, 반전 자체의 감정적 충격이 워낙 강해서 서사적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구간이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약점인지 강점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 앤드루 스콧 —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런 연기를 볼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퍼포먼스
- 죽은 부모와 커밍아웃 대화를 나누는 씬들 — 30년 늦은 대화의 무게와 온기를 동시에 담은 이 영화의 핵심
- 빛과 공간의 촬영 — 황금빛 노을이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는 이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된다
- 1980년대 퀴어 경험과 HIV/에이즈 위기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지 않고도 정확하게 담아냄
- 결말 반전이 감정적 충격에 집중한 나머지 서사적 복선이 다소 희박하게 느껴질 수 있음
- 초자연적 설정(유령·시간 붕괴)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는 방식이 일부 관객에게는 모호함으로 남는다
- 결말 이후 관객이 홀로 처리해야 하는 감정의 무게가 상당히 크다 — 영화 보는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대화들이 실제로 가능했더라면 —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만약'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앤드루 헤이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
앤드루 헤이는 데뷔작 위크엔드(2011)부터 일관되게 연결과 고독, 욕망과 두려움을 다뤄왔다. 45주년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보여줬다.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더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 과거가 물리적으로 현재 안으로 들어온다. 헤이가 야마다 타이치의 원작 유령 소설을 각색하면서 선택한 것은, 유령 공포 장르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퀴어 그리움과 유년의 상실을 놓는 것이었다. 그 교환이 이 영화를 원작과 전혀 다른 무엇으로 만들었다. 헤이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개인적인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작품이다.
감동과 연기 모두 5.0이다. 이 두 항목이 동시에 만점인 것은, 이 영화에서 감동이 연기를 통해서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분리되지 않는다.
죽은 부모에게 커밍아웃한다는 것 — 1980년대 퀴어 경험의 역사적 무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맥락은 직접 말해지지 않는다. 아담은 1980년대 초 영국에서 게이로 자랐다. 그 시기 영국에서 게이라는 것은 — 1988년 지방정부법 28조(동성애를 '가상의 가족 관계'로 조장하는 것을 금지한 법)가 존재했고, HIV/에이즈는 "게이 암"으로 불리며 사회적 낙인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담은 그 시대에 자랐다. 부모가 살아있었어도 커밍아웃이 쉬웠을지 모른다. 부모가 죽었으니 그 질문은 영원히 대답될 수 없었다.
영화는 이 역사를 배경 정보로 처리하지 않는다. 아담 엄마의 걱정 — "그건 외로운 삶이야" — 은 1980년대적 인식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그 걱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아담은 실제로 외롭다. 그리고 해리의 존재는 그 외로움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결말이 말한다.
헤이는 원작 일본 소설의 유령 이야기를 이 퀴어 역사로 교체했다. 그 교체가 이 영화를 단순한 판타지 드라마가 아닌 한 세대의 집단적 슬픔에 대한 애도로 만든다. 부모와 아들이 30년 늦게 나누는 대화들은 아담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퀴어들이 하지 못했거나 해내지 못한 대화들이기도 하다.
- 45주년을 봤다면 — 앤드루 헤이가 같은 주제를 훨씬 더 개인적으로 밀어붙인 작품
- 앤드루 스콧 또는 폴 메스칼의 팬 — 두 배우 모두 이 영화가 커리어 최고점 중 하나다
- 퀴어 영화를 좋아하는 분 — 비극이지만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작품
- 감정적으로 강한 영화를 경험하고 싶은 분 — 단, 혼자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보기를 권한다
- 부모 사별이나 고독 관련 정서에 현재 민감한 분 — 이 영화는 그 정서를 정면으로 다룬다
- 결말이 깔끔하게 해소되기를 원하는 분 — 이 영화의 결말은 복잡하고 무겁다
- 초자연적 설정에 명확한 설명을 원하는 분 — 영화는 끝까지 모호함을 유지한다
- 지금 감정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분 — 이 영화는 감정적 공간을 상당히 요구한다
아담은 말했다. 30년 늦었지만 말했다. 그것으로 무언가가 완성됐다. 그것이 이 영화가 슬프면서 따뜻한 이유다.
당신이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지금 해도 늦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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