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후기 — 웃기다가 울리는 한국 코미디 드라마

형 포스터

형이 돌아왔다. 15년간 연락 한 번 없던 사기꾼 형이, 하필 동생이 시력을 잃은 그 타이밍에 가석방으로 나타난다. 이 조합이 진부하게 들린다면,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그 진부함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봐야 한다.

한국 영화
MY ANNOYING BROTHER
형 · 2016
장르
코미디 · 드라마 · 스포츠
개봉
2016년 11월 · 극장 개봉
러닝타임
110분
원작
오리지널 시나리오
주연
조정석 · 도경수
감독
권수경
국내 시청 넷플릭스
외부 평점
IMDb 7.3
네이버 관객 8.91
연기
1
고두식 조정석
사기 전과 10범의 이복형. 뻔뻔함을 무기로 살아온 인간이지만, 동생과의 동거가 길어질수록 그 뻔뻔함 뒤에 숨긴 것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조정석이 보여주는 코미디와 감정의 전환은 이 영화의 핵심 동력.
2
고두영 도경수
유도 국가대표. 경기 중 사고로 시신경이 파열되어 영구 시력 장애 판정을 받는다. 운동밖에 모르던 청년이 모든 것을 잃은 채 방구석에 틀어박히는 모습을 도경수가 억압된 감정으로 섬세하게 담아냈다. 제38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수상.
3
이수현 박신혜
두영의 유도 코치. 재능 있는 후배가 선수 생명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설득을 반복한다. 두식과의 약속을 받아들이며 국가대표 코치직을 내려놓고 장애인 국가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기는 인물.

조정석과 도경수의 케미는 처음에 반발로 작동한다. 그 반발이 마찰을 만들고, 마찰이 온기를 만든다. 이 온기가 나중에 얼마나 뜨겁게 타오르는지는 후반부가 증명한다.

사기꾼이 들어오고 세상이 더 어두워졌다

유도 국가대표 고두영은 올림픽 선발전을 앞두고 경기 중 머리를 가격당한다. 시신경 파열. 의사는 완치 불가라고 말하고, 두영은 그대로 세상이 꺼진 어둠 속에 틀어박힌다. 밥도 안 먹고, 씻지도 않고, 운동은 더더욱 없다. 이복형 고두식이 나타난 건 바로 그 시점이다. 15년 만에, 가석방 조건으로, 동생의 보호자 자격을 달고.

두식에게 두영은 처음에 탈옥 명분에 가깝다. 자신을 믿지 않는 동생 집에 쳐들어가 외제차를 뽑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 두영은 형을 증오하고, 형은 그 증오에도 아랑곳없이 뻔뻔하게 공간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불편한 동거가 길어지면서 무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욕설 섞인 충돌 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며들고, 두식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진짜 보호자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전반부는 사실상 투닥거리는 브로맨스 코미디에 가깝다. 조정석의 타이밍 좋은 입담과 도경수의 입 꾹 다문 반응이 만드는 리듬이 유쾌하다. 그러다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며 갑자기 색을 바꾼다. 한국 코미디가 눈물을 준비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형 포스터2

조정석이 있어 이 공식도 살아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의 서사 공식은 낯설지 않다. 웃기다 울리는 한국식 가족 감동 공식, 뻔뻔하다가 결국 희생하는 캐릭터 반전, 장애 극복 스포츠물의 결말까지. 장르 문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조정석은 그 문법 안에서 고두식이라는 인물에 설명되지 않는 무게를 얹는다. 두식이 왜 15년간 떠나 있었는지, 왜 이복 형제 관계임에도 두영에게 집착하는지를 대사가 아닌 태도로 보여준다. 뻔뻔함이 방어기제라는 걸 관객은 언어 이전에 느끼게 된다.

도경수도 기대 이상이다. 운동선수 특유의 억압된 신체성을 잘 살렸고, 우울함이 분노로 터져나오는 장면들이 생각보다 자연스럽다. 전반부의 거친 욕설 연기가 다소 부자연스럽게 들리는 구간이 있지만, 후반부로 가며 그 어색함을 감정으로 덮어버린다.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은 납득이 가는 수상이다. 아쉬운 건 영화가 이 두 명 외에 다른 인물들을 공들여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신혜가 연기한 수현은 서사 기능은 충분한데, 인물로서의 밀도는 얕다.

형 포스터3

공식을 알면서도 울게 된다는 것

두식이 췌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혼자 알면서도 두영의 패럴림픽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다는 후반부는 예측 가능하다. 문 문지방을 제거하고 난간을 설치하고, 코치에게 부탁하고, 앞으로의 빈자리를 조용히 채워두는 그 과정이 결말을 향해 수렴할 때, 관객은 공식을 알면서도 울게 된다. 영화가 감동을 조작한다는 느낌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감정을 쌓아두기 때문이다. 패럴림픽 결승에서 두영이 한판승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바닥에 무릎 꿇으며 형을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정직하게 겨냥한 감정의 정점이다.

+
Good
  • 조정석의 코미디와 감정 전환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간다 — 대사가 아닌 태도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배우
  • 도경수의 억압된 신체성 연기,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 쌓여 터지는 방식이 설득력 있다
  • 전반 코미디의 리듬이 좋아 후반 감동으로의 전환이 급격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 두식이 두영의 미래를 조용히 준비해두는 장면들, 드라마적 장치임에도 감정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
Bad
  • 서사 공식이 너무 예측 가능 — 후반부의 반전 없는 반전이 장르 문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 박신혜의 수현 캐릭터가 기능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 있어야 하는 이유는 있지만 인물로서의 밀도가 얕다
  • 도경수의 전반부 욕설 연기가 다소 어색한 구간이 있다
  • 감동이 집중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중반에서 후반으로의 전환이 급격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끝에 가서 울었다면, 그건 이 영화가 공식을 넘어서는 순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 감동 공식의 교과서이자, 조정석의 독무대

이 영화가 특별히 새롭거나 대담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르 공식을 얼마나 능숙하게 소화하느냐'를 묻는다면,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7번방의 선물을 각색한 유영아 작가 특유의 웃음과 눈물 배합이 여기서도 작동하고, 권수경 감독은 두 배우가 충분히 빛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준다. 이 영화의 진짜 가치는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고두식 한 명을 통해 코미디와 연민과 비극을 동시에 다루는 방식에 있다. 그것만으로 110분이 아깝지 않다.

My Rating
3.8
/ 5.0
감동
4.0 재미 대체
스토리
3.5
연기
4.5
영상미
3.0
OST
3.5
몰입도
4.0

영상미 3.0이 아깝지 않다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두 배우의 얼굴이 이미 화면을 채울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나한테 맞을까?
O  이런 분께 추천
  • 웃기다 울리는 한국식 감동 공식을 좋아하는 분
  • 조정석의 코미디 연기를 좋아하거나, 그의 감정 폭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분
  • 도경수(EXO 디오)의 연기력이 궁금해서 첫 영화를 고르는 분
  • 무겁지 않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형제 드라마를 찾는 분
X  이런 분은 패스
  • 장르 공식을 벗어나는 새로운 서사를 기대하는 분
  • 예측 가능한 결말이 감동을 반감시킨다고 느끼는 분
  • 3인 이상의 인물이 모두 입체적으로 다뤄지는 군상극을 선호하는 분
  • 조정석·도경수 케미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분
"
공식을 알면서도 울게 만드는 건, 결국 조정석이 한 일이다
한국식 코미디 드라마의 정석, 그 정석을 배우 한 명이 살려내는 방식이 궁금한 분께
#형제브로맨스 #조정석 #도경수 #웃기다울린다

두식이 두영의 방에 난간을 달고, 문 문지방을 없애고, 집 안 동선을 바꾸는 장면들이 오래 남는다. 말 한마디 없이 떠나는 준비를 하는 사람의 손이 어떻게 보이는지, 이 영화는 그걸 조용히 보여준다.

가족인데 남보다 못한 관계,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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