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지 후기 — 망한 인생에 장국영이 나타났다
40대 영화 프로듀서, 실직, 달동네 하숙집, 그리고 장국영 귀신. 이 네 가지 조합이 이렇게 따뜻하고 쓸쓸하고 유머러스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영화가 2020년에 있었다. 관객은 3만 명도 되지 않았지만 본 사람들 사이에서 네이버 관람객 평점 9점대를 기록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만, 관객 복은 없었다.
강말금이라는 이름을 이 영화 전에 몰랐다면, 본 후에는 잊을 수 없게 된다. 연극 무대가 만들어낸 배우의 밀도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연기다.
망한 인생의 첫 번째 날
회식 자리에서 오래 함께한 감독이 갑자기 쓰러진다. 영화 프로듀서 찬실의 커리어는 그 순간 함께 끝난다. 짐을 대야에 넣어 머리에 이고 달동네 비탈을 오르는 첫 장면. "아, 망했다. 완전히 망했네." 찬실의 자조는 비장하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어른의 톤이다. 그게 이 영화가 처음부터 내미는 손이다.
새로 이사한 달동네 하숙집 주인 할머니는 뭔가 수상쩍다. 후배 배우 소피 집에 가사도우미로 취직하고 나서는 소피의 프랑스어 선생님 김영을 만난다. 영화 일을 잠시 내려놓은 단편 감독. 찬실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장국영이라 우기는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판타지 설정을 SF처럼 다루지 않는다. 장국영 귀신이 왜 찬실에게 나타나는지 설명하는 장면이 없다. 그는 그냥 거기 있고, 찬실도 점점 그 존재와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 영화의 정서가 그렇다. 설명하지 않고 함께 있어준다.
이 영화가 '망했다'고 말하는 방식
40대 실직 여성, 집 없는 삶, 연애도 없는 상태. 이 조합이면 신파가 되거나 사회 고발이 되기 쉽다. 김초희 감독은 두 방향 모두 거부한다. 찬실은 불쌍하지 않고, 세상도 악하지 않다. 그냥 일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 태도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특히 영화가 찬실의 실직을 영화 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연결하는 방식이 영리하다. 한 감독에게만 매달려온 프로듀서의 삶.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며 프로듀서의 존재를 투명하게 대하는 제작사 대표. 이 설정은 김초희 감독 본인이 홍상수 영화의 스태프로 오래 일하다가 겪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여러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찬실의 이야기는 그래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한국 독립영화 현장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후반부로 갈수록 찬실과 김영의 관계가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감정의 씨앗은 뿌렸지만 꽃이 피기 전에 영화가 끝나는 느낌이 든다.
장국영이 거기 있다는 것의 의미
장국영 귀신은 찬실이 영화에 대해 가진 사랑의 형상이다. 그 사랑이 어느 순간부터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 짐을 내려놓는 것이 이 영화의 감정적 클라이맥스다. 희망가를 부르며 언덕을 오르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그냥 계속 살아가는 사람의 노래다. 그게 이 영화 전체의 감정이기도 하다.
- 강말금의 장편 데뷔 주연 — 연극 배우 특유의 밀도 있는 연기가 96분 내내 영화를 지탱한다
- 윤여정의 짧고 강렬한 존재감 — 몇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캐릭터가 된다
- 판타지 설정을 설명 없이 풀어가는 방식 — 장국영 귀신의 존재를 관객 각자가 해석하게 둔다
- 웃음과 쓸쓸함을 동시에 다루는 솜씨 — 무겁지 않으면서 가볍지도 않은 균형이 탁월하다
- 찬실과 김영의 로맨스 라인이 충분히 전개되지 않는다. 감정의 설계는 있는데 완성이 아쉽다
- 조용한 호흡과 느린 전개 — 몰입도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 소피 캐릭터가 흥미롭게 제시되다가 중반 이후 존재감이 옅어진다
- 9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 오히려 몇몇 인물 관계를 성급하게 마무리하는 원인이 됐다
결점들을 알면서도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찬실이 달동네 언덕을 오르며 부르던 희망가 때문이다. 그 장면이 사라지지 않는다.
3만 명이 봤고, 그중 누구도 잊지 못한다
코로나 개봉 직격탄을 맞고도 네이버 관람객 평점 9점대를 유지하는 영화가 드물다. 본 사람들 안에서 이 영화가 얼마나 강하게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관객 수와 평점의 이 간극이 이 영화를 한국 독립영화의 특수한 장소에 위치시킨다. 넓게 보이지 않지만, 좁은 자리에서 가장 밝은 영화. 2020년 이후 '조용히 추천하고 싶은 한국 영화'를 물을 때마다 이 제목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연기 5.0을 두 편 연속으로 주게 됐다. 소공녀의 이솜이 캐릭터를 창조했다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강말금은 찬실이라는 사람을 살게 했다.
귀신의 기능 — 장국영은 왜 찬실에게만 보이는가
장국영 귀신은 이 영화에서 가장 논의할 만한 서사적 장치다. 그는 판타지적 존재이지만 공포를 자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찬실이 가장 취약할 때 나타나 영화 이야기를 하고, 찬실의 선택을 판단하지 않으며, 그녀 곁에 그냥 있어준다. 이 귀신의 정체에 대해 영화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사 구조상 그는 찬실이 영화에 바쳐온 시간의 총체, 즉 청춘과 사랑과 일이 뒤섞인 잔상이다.
주목할 점은 귀신이 장국영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국영은 스스로 삶을 마감한 홍콩 영화의 아이콘이다. 그 인물을 찬실의 환영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팬심이 아니다. 사랑했던 것을 잃는 것과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라는 두 주제를 한 캐릭터 안에 겹쳐놓는다. 찬실이 영화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장국영을 보내주는 과정과 겹치는 이유다.
결말에서 귀신이 사라지는 것은 찬실의 치유가 완성됐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사랑을 놓아도 자신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찬실이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이 구조는 홍상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반복과 변주의 문법과는 다른 길을 간다. 김초희는 스승의 문법을 배웠지만 자신의 감정으로 전혀 다른 집을 지었다.
- 강말금 또는 윤여정의 연기를 좋아하는 분 — 두 사람 모두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 판타지를 설명하지 않고 함께 느끼는 방식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
- 중년 여성의 위기와 재발명을 따뜻하게 다룬 이야기를 찾는 분
- 소공녀, 범죄의 여왕 등 한국 독립영화의 결이 좋았던 분
- 빠른 전개나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분 — 이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 로맨스 전개가 중심인 영화를 기대하는 분 — 감정의 방향은 로맨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 판타지 장르의 세계관 설정이나 스케일을 원하는 분
- 코미디로 보러 갔다가 조용한 감정에 당황할 수 있는 분
찬실이 달동네 언덕을 오를 때 부르는 희망가. 1920년대 채규업의 그 노래가 2020년 영화에서 이렇게 쓰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반갑다. 오래된 노래가 입에서 나올 때 생기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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