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나날 (See) 리뷰 — 제이슨 모모아 + 맹인 문명, 허무맹랑한가 걸작인가
눈이 보이지 않는 인류가 수 세기를 산다면 어떤 문명을 만들었을까 — <어둠의 나날>(See, 2019~2022)은 그 질문 하나로 출발한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입니다. <피키 블라인더스> 크리에이터 스티브 나이트가 만들고, 제이슨 모모아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시즌1 로튼토마토 44%라는 혹평 출발에서, 시즌2 83%로 역주행해 전 3시즌 완결까지 이어진 문제작이에요. 2025년에도 애플TV+ 글로벌 탑10을 반년 넘게 지키고 있습니다.
줄거리 — 눈 먼 세계에서 눈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났다
배경은 서기 10191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인류 대부분을 쓸어버린 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시력을 잃었습니다. 수 세기가 지나 시각은 전설이 됐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마녀나 이단으로 화형당합니다. 인류는 청각·촉각·후각을 극도로 발달시켜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고, 그 세계는 나름의 질서와 종교로 유지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알케니 부족의 전사 바바 보스(제이슨 모모아) 앞에 아내 마그라가 쌍둥이를 낳습니다. 두 아이 코펀과 하니와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파야 왕국의 시베스 여왕(실비아 획스)은 마녀사냥꾼을 파견해 쌍둥이를 말살하려 하고, 바바는 부족을 이끌고 도망칩니다. 시즌1은 그 쫓고 쫓기는 생존극이 뼈대입니다.
시즌2부터 이야기는 확장됩니다. 쌍둥이가 성장하면서 시력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바바의 형제이자 적수인 에도(데이브 바티스타)가 등장해 왕국들 사이의 정치 스릴러가 덧씌워집니다. 시즌3에서는 트리반티스의 과학자가 개발한 신무기가 인류 멸종의 위협으로 부상하며, 서사가 원점에서 다시 한번 인류의 생존이라는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장점 — 보이지 않아도 이렇게 싸울 수 있다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액션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전사들의 전투는 애초에 불가능해 보이는 설정인데, 제이슨 모모아의 바바 보스는 소리와 진동만으로 싸우는 독창적인 격투 스타일을 구현합니다. 대규모 전쟁 장면은 넷플릭스 일반 드라마보다 훨씬 높은 스케일의 촬영으로 만들어졌고, 애플TV+의 제작비가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습니다.
세계관 구축도 놀랍습니다. 실제 시각장애인 배우들과 전문 코치를 기용해, 눈 먼 인류가 진짜 만들었을 법한 문명의 디테일을 채워 넣었습니다. 베틀 구조, 집의 설계 방식, 전투 대형, 종교 의식까지 —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깊이 사유한 흔적이 곳곳에 있습니다.
시즌2의 에도-바바 형제 대결 구도는 이 드라마를 단순 액션극에서 끌어올린 핵심입니다. 바티스타는 화려한 빌런 연기로 시즌1의 평평했던 서사에 감정의 깊이를 더하고, 두 남자의 형제 갈등은 마지막 시즌까지 정서적 엔진 역할을 합니다.
아쉬운 점
시즌1의 개연성 문제는 분명합니다. 맹인들의 전투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내적 논리가 초반에 충분히 제시되지 않아, 설정 자체가 황당하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스토리 전개도 느리고, 캐릭터들의 동기가 납득되지 않는 순간이 반복됩니다. 비평가들이 시즌1에서 등을 돌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에요. 참고로 시즌2부터 정상화되니, 시즌1을 견딘다면 훨씬 나은 경험이 기다립니다.
- 눈 먼 전사들의 액션 — 독창적이고 압도적인 전투 연출
- 맹인 문명 세계관의 디테일 — 실제 시각장애인 자문 기반
- 제이슨 모모아의 캐리어 베스트 퍼포먼스
- 시즌2 데이브 바티스타 합류 후 극적으로 좋아지는 서사
- 실비아 획스의 시베스 여왕 — TV 역사상 손꼽히는 빌런
- 애플TV+ 수준의 영화급 제작비·영상미
- 시즌1 초반 개연성 부족 — 설정 납득 전까지 허무맹랑
- 시즌1 전반적으로 느린 전개와 캐릭터 동기 불명확
- 폭력·유혈 수위 높음 — TV-MA, 선호하지 않는 분께 부담
- 세계관 디테일 대비 스토리 완성도는 아쉬운 부분 존재
총평
비평가들이 시즌1에서 등을 돌린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즌2에서 데이브 바티스타가 합류하고 서사가 정교해지면서, 이 드라마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3시즌을 완주한 뒤 돌아보면, 처음의 불친절함조차 세계관에 대한 투자로 느껴질 정도예요. 시즌1 3화까지 버티는 것이 진입 조건입니다.
시각을 잃은 인류는 무엇을 더 예민하게 느끼는가 — 설정의 철학
<어둠의 나날>이 단순 액션극과 다른 지점은 맹인 문명을 다루는 태도에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시각장애를 결핍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인류는 청각과 촉각과 후각으로 세상을 재구성했고, 나름의 완성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다수의 정상성을 위협하는 이단이에요. 그 역전이 드라마의 도덕적 핵심입니다.
크리에이터 스티브 나이트는 <피키 블라인더스>에서 그랬듯 권력과 생존 사이에서 도덕이 어떻게 타협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시베스 여왕이 시력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자신의 지배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입니다. 지식은 항상 기존 질서를 위협하고, 기존 질서는 항상 지식을 두려워합니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가 포스트아포칼립스 액션으로 변주된 셈이죠.
시즌2에서 에도-바바 형제 구도가 들어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두 형제는 같은 눈 먼 세계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 법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도덕적으로 어느 쪽이 옳은지 드라마는 끝까지 판정하지 않습니다. 맹인 문명이라는 극단적 설정 위에서, 결국 인간 본성에 관한 아주 오래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 제이슨 모모아 팬 — 그의 필모그래피 최고작 수준
- 독창적인 SF 세계관 좋아하는 분
- 게임 오브 스론스 이후 비슷한 서사 규모를 원하는 분
- 시즌1 고비를 넘기면 시즌2부터 완전히 다른 드라마
- 완결작을 몰아보고 싶은 분 (전 3시즌 24화)
- 고어·유혈 장면 못 보는 분 (TV-MA 수위)
- 허점 없는 단단한 서사를 원하는 분
- 느린 전개에 쉽게 이탈하는 분 (시즌1 초반 4화)
전혀 다른 드라마가 기다린다
데이브 바티스타의 등장이 모든 것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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