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리뷰 — 뒤라스 원작, 1929년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세기의 로맨스
1992년, 두 편의 영화가 전 세계 관객에게 1920~30년대 베트남의 뜨거운 공기를 전했다. 그 중 하나가 장 자크 아노 감독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소설을 원작으로 완성한 <연인>(L'Amant / The Lover)이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계급과 인종, 나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금지된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촬영 당시부터 선정성 논란과 함께 전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두 주연 배우 제인 마치와 양가휘를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줄거리 — 메콩강 위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계절
1929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현 베트남). 방학을 마치고 사이공의 기숙학교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메콩강 나루터에 선 소녀는 열다섯 살이다. 남자 중절모를 비스듬히 얹은 채 낡은 원피스 한 장을 걸친 모습으로 강 건너를 바라보는 그녀에게는 가난한 어머니, 도박으로 돈을 날린 가족, 그리고 자신의 몸 말고는 가진 것이 없다. 나룻배 위에서 그녀를 발견한 남자가 있다. 사이공 화교 사회의 거부(巨富) 아들로, 반짝이는 검은 리무진을 몰며 그녀에게 말을 건다.
두 사람은 사이공의 좁고 어두운 밀실에서 만남을 반복한다. 남자는 소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중국인 여자와 결혼하길 원하고, 소녀의 가족은 그의 돈이 필요하다. 소녀는 이것이 사랑인지 욕망인지 거래인지를 끝까지 부정하려 한다. 두 사람 모두 결말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카뮈의 소설처럼 출구가 없는 태양 아래, 혹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수십 년 후 회고하며 쓴 소설처럼, 이 영화는 사랑이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다. 분위기는 담담하고 잔혹하며 아름답다. 낭만적인 로맨스보다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쓸쓸한 회고록에 가깝고, 그래서 자극적인 장면들 사이에서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슬픔이 남는다.
이 영화를 지탱하는 것들 — 영상, 음악, 그리고 양가휘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촬영감독 로베르 프레스(Robert Fraisse)의 화면이다.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오른 것이 단순히 에로틱한 장면 때문만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1929년 베트남을 재현하기 위해 135일간 현지 촬영을 강행한 아노 감독의 집념이 화면 곳곳에 새겨져 있다. 황토빛 도로, 메콩강의 짙푸른 수면, 벌집처럼 연결된 사이공의 뒷골목, 그리고 어두운 방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열대의 빛. 이 모든 장면이 함께 소멸해가는 식민지 시대의 공기를 생생하게 살려낸다.
가브리엘 야레드(Gabriel Yared)의 음악은 세자르상을 수상했다. 야레드는 베트남 전통 음악과 서양 재즈를 뒤섞어, 두 사람의 관계처럼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한데 얽히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소녀가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쇼팽의 왈츠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강한 감정적 타격을 준다.
양가휘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요소다. 원작 소설의 중국인 남자는 유약하고 깡마른 체구였지만, 건장한 체격의 양가휘는 캐릭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내면이 무너지는 남자,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을 이룰 용기가 없는 남자를 그는 눈빛과 침묵으로만 전달한다. 반면 제인 마치는 표정의 범위가 좁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무감각한 얼굴이 소녀의 정서적 단절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아쉬운 점
원작 소설의 힘은 뒤라스의 문체에서 온다. 파편적이고 비선형적이며 시간을 비틀어 감정을 축적하는 방식이 소설을 걸작으로 만드는 핵심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문체를 잔 모로의 내레이션으로 대체하고 나서, 나머지 부분은 비교적 순차적이고 직선적인 서사로 진행한다. 내레이션과 화면의 시점이 어긋나는 문학적 긴장감이 중반 이후 약화되면서, 영화는 점점 수준 높은 에로틱 드라마의 외형에 가까워진다. 두 인물의 관계가 성적 장면 밖에서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얕다는 비판도 유효하다. 아노 감독 스스로 성 장면이 "실제인지 연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의도적으로 선정성을 홍보한 탓에, 당시 비평가들은 영화를 작품으로 보기보다 스캔들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로튼토마토 점수가 20%에 불과한 것도 1990년대 초 비평가들이 이런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며, 해당 점수는 15편의 리뷰만을 기반으로 한 참고용 수치임을 감안해야 한다.
- 1929년 베트남을 완벽히 재현한 아카데미급 촬영 — 화면 자체가 작품이다
- 가브리엘 야레드의 세자르상 수상 음악 — 베트남 전통음악과 서양 재즈의 결합
- 양가휘의 침묵 연기 — 대사 없이 눈빛으로 무너지는 남자를 구현
- 잔 모로의 내레이션 — 회고의 시점이 영화 전체에 문학적 무게를 더함
- 뒤라스 원작 특유의 비극적 여운 — 끝난 사랑을 되새기는 쓸쓸한 감정선
- 원작 소설의 파편적 문체를 제대로 영상화하지 못한 아쉬움
- 제인 마치의 연기 스펙트럼이 좁아 주인공의 내면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음
- 두 인물의 관계 발전이 성적 장면 외에는 상대적으로 피상적
- 선정성 홍보 전략이 영화의 문학적 가치를 오히려 희석시켰던 역사
총평
재미 점수가 6.5로 낮게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결함이 아니라 이 영화의 선택이다. <연인>은 사건이 아니라 질감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아노는 관객에게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게 하는 대신, 1929년 사이공의 습한 공기와 황토빛 먼지와 금지된 밀실의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기를 요청한다. 그 요청에 응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영상과 음악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다.
소녀는 욕망으로 식민지에서 탈출한다 — 그리고 그 탈출조차 남자에게 의존해야 한다
이 영화를 에로틱 드라마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연인>은 삼중의 권력 구조 위에 놓여 있다. 식민지배자(프랑스)와 피지배자(베트남), 부유층(중국 거부)과 빈곤층(프랑스 이민 가족), 그리고 성인 남성과 15세 소녀. 흥미로운 것은 세 축의 권력 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소녀는 인종적으로는 지배자의 위치에 있지만 계급적으로는 남자에게 기대야 하며, 나이로는 가장 약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성적으로는 남자를 지배한다.
뒤라스의 원작이, 그리고 영화의 내레이션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소녀가 이것이 사랑이 아님을 알면서도 관계에 뛰어든다는 사실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거래인 것도 알고, 결국 남자가 부잣집 중국 여자와 결혼하리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소녀는 이 관계를 통해 무너진 가족으로부터, 빈곤으로부터, 그리고 식민지라는 지리적 감옥으로부터 일시적이나마 벗어난다. 욕망이 탈출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노의 카메라는 그 탈출이 온전하지 않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소녀는 항상 중국인 남자의 공간(리무진, 밀실, 식당)에서 만난다. 그녀가 능동적으로 보이는 순간에도 그 능동성은 남자의 돈과 공간 안에서만 허락된다. 식민지의 소녀가 자신의 몸을 유일한 자본으로 써서 탈출을 시도한다는 이 구조는, 마지막 장면에서 배가 프랑스로 떠날 때 남자가 자신의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뒤집힌다. 소녀는 떠나고, 남자는 머문다. 욕망으로 탈출한 것은 결국 소녀였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을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분
- 사건보다 분위기, 스토리보다 질감으로 감상하는 영화를 즐기는 분
- 1920~30년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시각적 재현에 관심 있는 분
- 아트하우스 에로틱 드라마 장르(마지막 탱고 인 파리, 아이노 코리다 계보) 팬
- 강한 서사와 캐릭터 성장을 기대하는 분
- 선정적 장면에 거부감이 있는 분
- 미성년 캐릭터가 등장하는 성인 소재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
- 원작 소설의 문학적 수준을 영화에서도 기대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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