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후기 —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그때가 실제로 좋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억이 좋게 편집했기 때문일까
첫사랑은 실제보다 좋게 기억된다. 그걸 알면서도 그 기억을 붙드는 게 사람이다. 그 해 우리는은 정확히 그 지점을 건드린다. 전교 꼴등과 전교 1등의 다큐멘터리가 10년 후 역주행하면서 억지로 재회하게 된 두 사람 — 설정만 읽으면 뻔한 로맨스 같지만, 최우식과 김다미가 만나는 순간 뭔가 다른 드라마가 된다. TV 시청률은 5%대였지만 대본집이 10만 부 가까이 팔렸다. 이 숫자가 이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인지를 말해준다.
최우식과 김다미는 스크린에서 함께 있을 때 서로를 더 잘 보이게 만드는 배우다. 이 케미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절반의 드라마였을 것이다.
다큐의 피사체가 되어버린 전 연인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가장 다른 두 사람 — 전교 꼴등 최웅과 전교 1등 국연수 — 이 한 달 동안 같이 지내는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그 다큐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인터넷에서 역주행 화제가 된다. 두 사람은 이미 사귀었고, 5년을 만났고, 헤어졌다. 그런데 카메라가 다시 그들을 부른다.
드라마의 형식이 독특하다. 과거 다큐의 피사체로 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현재의 재회가 교차되고, 그 사이에 다큐 감독 김지웅의 시선이 끼어든다. '전지적 시점'이라는 부제처럼, 시청자는 카메라 안과 밖 모두를 동시에 본다. 이 구조 덕분에 두 사람의 첫 만남과 현재의 감정이 겹쳐 읽히는 순간들이 생기고, 그 겹침의 온도가 이 드라마를 다른 재회물과 구별시킨다.
이나은 작가 특유의 속마음 나레이션이 대사 사이사이에 깔린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목소리로 꺼내놓는 방식은 자칫 과잉 설명이 될 수 있지만, 최웅과 연수의 캐릭터가 워낙 단단해서 나레이션이 감정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함께 숨 쉬는 느낌이 든다.
카메라 앞에서 들키는 것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은 두 주인공의 감정선이 설명되지 않고 행동으로 쌓인다는 점이다. 최웅은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다. 연수가 힘들어 보일 때 자리를 지키고, 멀리서 지켜보고, 어긴 적이 없는 약속을 지킨다. 그 축적이 12화쯤에 폭발하는 순간이 이 드라마의 정점이다. 그 장면 하나로 이 드라마를 본 이유가 정당화된다.
영상미도 탁월하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 전주 한옥마을, 수원화성 주변의 낡은 거리들 — 서울의 익숙한 공간이 아닌 약간 비껴선 장소들을 배경으로 택한 선택이 드라마에 독특한 질감을 준다. 특히 BTS 뷔의 'Christmas Tree'가 흐르는 장면들은 드라마의 정서와 완벽하게 붙어있어, 이 OST 없이 이 장면들을 상상하기 어렵다. 남혜승 음악감독이 기획 단계부터 뷔를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들었다는 말이 음악 위에서 납득된다.
다만 12화 이후 페이스가 흔들린다. 두 주인공의 재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조연들의 서사를 채우기 시작하는데, 김지웅과 NJ(노정의)의 이야기가 메인 커플의 감정선만큼 깊게 쌓여 있지 않아서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평평하게 느껴진다.
- 최우식×김다미 케미 — 설명 없이 쌓이는 감정선이 12화에 터지는 방식이 탁월하다
- 다큐 메타 구조 — 과거와 현재, 카메라 안팎을 교차하는 형식이 재회물의 클리셰를 비껴간다
- BTS 뷔 'Christmas Tree' + 남혜승 OST — 장면과 음악이 처음부터 함께 설계된 완성도
- 촬영지의 질감 — 북촌·전주 한옥마을·수원화성 주변의 비일상적 공간 선택이 드라마에 독특한 색을 입힌다
- 12화 이후의 페이스 이탈 — 주인공 서사가 정점을 찍은 후 조연들로 중심이 이동하며 후반부가 평평해진다
- 조연 서사의 상대적 빈약함 — 김지웅·NJ의 이야기가 메인 커플만큼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 TV 시청률과 실제 반응의 괴리 — OTT·VOD 환경을 고려하면 이해되지만, 방영 당시 극장감이 희석되는 측면이 있었다
- 나레이션 과의존 구간 — 초반 일부 장면에서 감정을 행동보다 나레이션으로 먼저 설명하는 경향
12화의 그 장면 이후, 화면을 끄지 못했다. 그게 이 드라마가 한 일이고, 대본집 10만 부가 팔린 이유다.
첫사랑이 기억을 조작하는 방식
그 해 우리는은 재회 로맨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문법의 핵심에 질문을 심는다. 우리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그때가 실제로 좋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억이 좋게 편집했기 때문일까. 최웅과 연수는 서로에 대한 기억을 각자 다르게 갖고 있다. 다큐 카메라가 그 두 기억의 간극을 들여다보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이 드라마가 단순한 로맨스보다 한 겹 더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다. TV 화제성 1위를 기록하면서도 시청률은 5%대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2021년 한국 드라마 소비 방식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TV가 아니라 넷플릭스와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살았다.
OST 5.0은 이 드라마의 유일한 만점이다. 뷔의 목소리가 최웅의 작업실 LP에서 흘러나오는 그 장면이, 음악과 장면이 처음부터 함께 설계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 첫사랑·재회물을 좋아하지만 진부함이 싫은 분 — 다큐 구조가 클리셰를 비껴간다
- 최우식·김다미의 케미를 처음 경험하는 분 — 이 드라마가 두 배우의 대표작이다
- OST 한 곡이 드라마 전체를 좌우하는 경험을 원하는 분
- 16화를 틈틈이가 아니라 주말에 한 번에 보고 싶은 분 — 회차가 잘 끊긴다
- 액션·스릴러를 원하는 분 — 드라마 내내 사건보다 감정이 중심이다
- 후반부까지 고른 텐션을 원하는 분 — 12화 이후 조연 중심으로 이동하며 페이스가 떨어진다
- 로맨스 장르 자체를 즐기지 않는 분 — 구조가 독특해도 본질은 재회 멜로다
-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분 — 감정이 천천히, 말 대신 행동으로 쌓이는 드라마다
TV 시청률 5%짜리 드라마의 대본집이 10만 부 가까이 팔렸다. 읽고 싶다는 건, 기억에 남겼다는 뜻이다. 재회하면 다시 좋아지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두 배우가 그대로 살아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Christmas Tree'를 다시 들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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