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후기 — 줄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든다. 무엇을 찍을지 정하지 않은 채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포스터

제목은 자책이 아니다. 노르웨이어 원제 "Verdens verste menneske"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일상적인 자기 비하 표현이다. 줄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름이 그녀를 주변 사람들에게 때로 최악이 되게 만든다. 요아킴 트리에는 그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걸어간다, 4년 동안.

노르웨이 로맨틱 드라마
Verdens verste menneske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 2021
오슬로 삼부작 3부
장르
로맨틱 드라마 · 코미디
개봉
2021 · 노르웨이 2021.10.15
러닝타임
127분
원작
오리지널 각본
주연
레나테 라인스베 · 안데르스 다니엘센 리
감독
요아킴 트리에
국내 시청 넷플릭스 왓챠 티빙
외부 평점
IMDb 7.7
RT 96%
Metacritic 91
연기
1
줄리 레나테 라인스베 · Renate Reinsve
의대생에서 심리학, 사진, 글쓰기로 전공을 옮겨 다니는 29세 오슬로 여성. 무엇 하나를 결정하면 늘 다른 가능성이 더 좋아 보인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 감독 요아킴 트리에가 각본을 쓸 때 염두에 둔 배우로, 이 역할로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
악셀 안데르스 다니엘센 리 · Anders Danielsen Lie
줄리보다 15살 많은 성공한 만화가. 아이를 원하고, 관계를 정착시키고 싶다. 줄리를 사랑하지만 줄리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점점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 트리에 감독의 전작 《오슬로, 8월 31일》의 주인공 배우로, 이 영화에서 전혀 다른 역할로 등장한다.
3
에이빈드 헤르베르트 노르드룸 · Herbert Nordrum
줄리가 우연히 침입한 결혼 피로연에서 만나는 바리스타. 그도 연인이 있고, 줄리도 악셀이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선을 넘지 않은 채 서로에게 끌린다. 그 '선을 넘지 않은 끌림'의 장면이 이 영화 최고의 시퀀스 중 하나다.

레나테 라인스베는 이 역할을 제안받기 하루 전날 배우를 포기하고 목공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하루 차이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 자체가 이미 줄리의 이야기 같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영화 속 장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의 열두 챕터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그 사이 열두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소설처럼. 줄리의 4년을 따라가는 구조인데, 각 챕터가 짧고 제목이 있어서 체감은 단편집 읽는 것에 가깝다. 어떤 챕터는 가볍고 어떤 챕터는 예상치 않게 무거워진다. 그 리듬의 변화가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다.

줄리는 의대에서 심리학으로, 심리학에서 사진으로 전공을 옮긴다. 악셀이라는 15살 연상 만화가와 연애를 시작하고, 편안하게 지내다가 — 결혼 피로연에서 에이빈드라는 남자를 만난다. 둘 다 상대방이 있는 상황이지만 밤새 같이 있으면서 키스하지 않는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전기가 통하는 순간 중 하나다. 선을 넘지 않은 채로 이미 선을 넘은 느낌.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아주 다른 곳으로 간다. 두 번째 관계,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될 때 — 이 영화가 장르를 해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영화 속 장면

세상이 멈춘 오슬로를 혼자 달리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있다. 악셀에게 전화를 하려다 충동적으로 에이빈드를 찾아가는 줄리. 그때 세상이 멈춘다 — 문자 그대로. 주변 모든 사람들이 정지하고 줄리만 움직인다. 그녀는 오슬로 거리를 뛰어서 달린다. 웃으면서. 그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연애가 아니라 자유다. 선택 이전의 순간, 아직 결과를 모르는 그 찰나의 가벼움. 트리에는 그것을 판타지 시퀀스로 시각화하면서 줄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설명 없이 전달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영화가 어느 정도 특정 세대와 계층의 감수성에 조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슬로, 30대 초반, 창작 직종,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 — 그 좌표 바깥의 관객에게는 줄리의 고민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가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공감의 범위는 분명 존재한다.

+
Good
  • 레나테 라인스베의 칸 여우주연상 연기 — 줄리가 공감도 되고 답답하기도 한데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전적으로 그녀 때문이다
  • 열두 챕터 구조 — 단편소설 읽는 리듬. 각 챕터가 독립적이면서 전체를 이룬다
  • 세상이 멈추는 판타지 시퀀스, 버섯 환각 장면 등 현실 안에 실험적 형식을 자연스럽게 삽입하는 연출
  • 장르 기대를 조용히 배반하는 후반부 —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해 전혀 다른 감정으로 끝난다
-
Bad
  • 줄리의 고민이 특정 세대·계층의 감수성에 조율되어 있어 공감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
  • 일부 챕터는 전체 흐름에 기여하는 비중이 다소 낮게 느껴진다
  • 열두 챕터 형식이 낯선 관객에게는 처음에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 오슬로 삼부작 전작을 보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감상 가능하지만, 안데르스 다니엘센 리를 전작에서 본 관객이라면 악셀의 감정에 배가 된다

줄리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 나도 저런 적 있었다는 기억이 같이 온다. 그것이 이 영화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My Rating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4.5
/ 5.0
감동
4.5
스토리
4.5
연기
5.0
영상미
4.5
OST
4.0
몰입도
4.5

재미 레이블을 감동으로 대체했다. 웃기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영화인데, 끝나고 남는 것은 웃음보다 여운이라서.

서사 구조 Analysis

장르 해체가 아니라 장르 확장 — 로맨틱 코미디가 성장 소설이 되는 방법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그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장르 로맨틱 코미디는 보통 두 사람이 만나고 → 장애물이 생기고 → 결합하는 구조다. 이 영화는 그 구조를 절반쯤 따라가다가 결합 이후에 더 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줄리가 에이빈드와 함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이 중간점이지 결말이 아니다.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온다.

열두 챕터라는 구조는 이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적 장치다. 각 챕터가 독립적인 호흡을 가지기 때문에 영화는 서사의 연속성이 아니라 삶의 불연속성을 구조로 담는다. 줄리의 삶은 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결정하고 바꾸고, 나아가다 멈추고, 잊은 줄 알았던 것이 돌아온다. 그 비선형적 삶의 질감을 챕터 구조가 담아낸다. 요아킴 트리에가 오슬로 삼부작에서 일관되게 탐구해온 것 — 삶의 특정 시기에 갇힌 인간의 내면 — 이 이 영화에서 가장 밝고 가장 따뜻한 형태로 도달한다.

결말에서 줄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됐는가?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다만 줄리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 더 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고 영화는 말한다. 그 "충분하다"의 감각이 이 영화의 정서적 핵심이다.

이 작품, 나한테 맞을까?
O  이런 분께 추천
  • 20대 후반~30대 초반을 지나온, 또는 지나고 있는 분 — 줄리의 혼란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지만 그 공식에 지친 분
  • 연기 그 자체를 감상하는 분 — 레나테 라인스베의 칸 수상 연기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 유럽 북유럽 영화의 감성 — 오슬로의 계절, 빛, 공간이 영화의 일부다
X  이런 분은 패스
  •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주인공을 답답해서 보지 못하는 분
  • 명확한 서사 전개와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분
  • 열두 챕터 형식이 처음에 산만하게 느껴진다면 인내가 필요하다
  • 특정 라이프스타일과 계층의 고민으로 공감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고 느끼는 분
"
세상이 멈춰도 줄리는 달린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모든 분께
#오슬로삼부작 #칸여우주연상 #레나테라인스베 #30대문턱

줄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든다. 무엇을 찍을지 정하지 않은 채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요아킴 트리에가 이 영화 내내 말하려 했던 것은 결국 그것이다 —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 아직 자신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

당신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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