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후기 — 줄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든다. 무엇을 찍을지 정하지 않은 채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제목은 자책이 아니다. 노르웨이어 원제 "Verdens verste menneske"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일상적인 자기 비하 표현이다. 줄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름이 그녀를 주변 사람들에게 때로 최악이 되게 만든다. 요아킴 트리에는 그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걸어간다, 4년 동안.
레나테 라인스베는 이 역할을 제안받기 하루 전날 배우를 포기하고 목공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하루 차이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 자체가 이미 줄리의 이야기 같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의 열두 챕터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그 사이 열두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소설처럼. 줄리의 4년을 따라가는 구조인데, 각 챕터가 짧고 제목이 있어서 체감은 단편집 읽는 것에 가깝다. 어떤 챕터는 가볍고 어떤 챕터는 예상치 않게 무거워진다. 그 리듬의 변화가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다.
줄리는 의대에서 심리학으로, 심리학에서 사진으로 전공을 옮긴다. 악셀이라는 15살 연상 만화가와 연애를 시작하고, 편안하게 지내다가 — 결혼 피로연에서 에이빈드라는 남자를 만난다. 둘 다 상대방이 있는 상황이지만 밤새 같이 있으면서 키스하지 않는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전기가 통하는 순간 중 하나다. 선을 넘지 않은 채로 이미 선을 넘은 느낌.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아주 다른 곳으로 간다. 두 번째 관계,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될 때 — 이 영화가 장르를 해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이 멈춘 오슬로를 혼자 달리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있다. 악셀에게 전화를 하려다 충동적으로 에이빈드를 찾아가는 줄리. 그때 세상이 멈춘다 — 문자 그대로. 주변 모든 사람들이 정지하고 줄리만 움직인다. 그녀는 오슬로 거리를 뛰어서 달린다. 웃으면서. 그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연애가 아니라 자유다. 선택 이전의 순간, 아직 결과를 모르는 그 찰나의 가벼움. 트리에는 그것을 판타지 시퀀스로 시각화하면서 줄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설명 없이 전달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영화가 어느 정도 특정 세대와 계층의 감수성에 조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슬로, 30대 초반, 창작 직종,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 — 그 좌표 바깥의 관객에게는 줄리의 고민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가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공감의 범위는 분명 존재한다.
- 레나테 라인스베의 칸 여우주연상 연기 — 줄리가 공감도 되고 답답하기도 한데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전적으로 그녀 때문이다
- 열두 챕터 구조 — 단편소설 읽는 리듬. 각 챕터가 독립적이면서 전체를 이룬다
- 세상이 멈추는 판타지 시퀀스, 버섯 환각 장면 등 현실 안에 실험적 형식을 자연스럽게 삽입하는 연출
- 장르 기대를 조용히 배반하는 후반부 —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해 전혀 다른 감정으로 끝난다
- 줄리의 고민이 특정 세대·계층의 감수성에 조율되어 있어 공감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
- 일부 챕터는 전체 흐름에 기여하는 비중이 다소 낮게 느껴진다
- 열두 챕터 형식이 낯선 관객에게는 처음에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 오슬로 삼부작 전작을 보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감상 가능하지만, 안데르스 다니엘센 리를 전작에서 본 관객이라면 악셀의 감정에 배가 된다
줄리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 나도 저런 적 있었다는 기억이 같이 온다. 그것이 이 영화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재미 레이블을 감동으로 대체했다. 웃기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영화인데, 끝나고 남는 것은 웃음보다 여운이라서.
장르 해체가 아니라 장르 확장 — 로맨틱 코미디가 성장 소설이 되는 방법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그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장르 로맨틱 코미디는 보통 두 사람이 만나고 → 장애물이 생기고 → 결합하는 구조다. 이 영화는 그 구조를 절반쯤 따라가다가 결합 이후에 더 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줄리가 에이빈드와 함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이 중간점이지 결말이 아니다.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온다.
열두 챕터라는 구조는 이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적 장치다. 각 챕터가 독립적인 호흡을 가지기 때문에 영화는 서사의 연속성이 아니라 삶의 불연속성을 구조로 담는다. 줄리의 삶은 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결정하고 바꾸고, 나아가다 멈추고, 잊은 줄 알았던 것이 돌아온다. 그 비선형적 삶의 질감을 챕터 구조가 담아낸다. 요아킴 트리에가 오슬로 삼부작에서 일관되게 탐구해온 것 — 삶의 특정 시기에 갇힌 인간의 내면 — 이 이 영화에서 가장 밝고 가장 따뜻한 형태로 도달한다.
결말에서 줄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됐는가?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다만 줄리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 더 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고 영화는 말한다. 그 "충분하다"의 감각이 이 영화의 정서적 핵심이다.
- 20대 후반~30대 초반을 지나온, 또는 지나고 있는 분 — 줄리의 혼란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지만 그 공식에 지친 분
- 연기 그 자체를 감상하는 분 — 레나테 라인스베의 칸 수상 연기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 유럽 북유럽 영화의 감성 — 오슬로의 계절, 빛, 공간이 영화의 일부다
-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주인공을 답답해서 보지 못하는 분
- 명확한 서사 전개와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분
- 열두 챕터 형식이 처음에 산만하게 느껴진다면 인내가 필요하다
- 특정 라이프스타일과 계층의 고민으로 공감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고 느끼는 분
줄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든다. 무엇을 찍을지 정하지 않은 채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요아킴 트리에가 이 영화 내내 말하려 했던 것은 결국 그것이다 —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 아직 자신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
당신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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