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러맨 후기 — CGI 원숭이가 전기 영화를 구원하는 법
로비 윌리엄스를 CGI 침팬지로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처음 들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미쳤다"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베러맨>은 분명히 미친 영화다. 다만 그 광기가 전기 영화라는 장르에서 가능한 가장 정직한 자기 고백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이다. $110M을 들여 $22.5M을 벌어들인 흥행 참패 속에서, 이 영화는 왜 보헤미안 랩소디가 아닌 방향으로 가야 했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CGI 침팬지의 눈이 이렇게까지 슬플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작동하는 이유의 전부다.
스토크온트렌트에서 넵워스까지, 원숭이의 자서전
1982년 영국 스토크온트렌트. 여덟 살 로버트 윌리엄스는 운동장에서 루저 취급을 받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다르다. 카바레 코미디언인 아버지 피터에게서 재능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물려받은 로비는 16세에 보이밴드 테이크 댓에 합류하며 별이 된다. 하지만 밴드 내 갈등과 자신의 파괴적 행동 패턴은 결국 탈퇴로 이어진다.
솔로로 전향한 로비는 Angels, Let Me Entertain You, Rock DJ로 영국 팝의 정상에 오르지만, 명성이 커질수록 약물 의존과 자기혐오도 깊어진다.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그 인정이 '로비 윌리엄스'라는 페르소나를 향한 것임을 알기에 고통받는다. 영화는 넵워스 페스티벌의 역사적 공연을 클라이맥스로 삼아, 무대 위의 환호와 내면의 자기파괴가 동시에 폭발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CGI 침팬지를 통해 전달된다. 윌리엄스 본인이 "나는 나를 공연하는 원숭이로 본다"고 말한 자기 인식을 리터럴하게 영상화한 것인데, 처음 5분간의 이질감이 지나면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아무도 그가 원숭이라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그것이 영화의 논리 안에서 완벽하게 기능한다.
기믹이 진심이 되는 순간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성취는 뮤지컬 시퀀스에 있다. Rock DJ 장면은 테이크 댓의 부상을 5분짜리 원테이크 뮤지컬 넘버로 압축하는데, 의상 교체와 안무 전환과 군중 연출이 모두 하나의 끊김 없는 숏 안에서 이루어진다. 라라랜드가 떠오르는 수준의 기술적 야심이다. Let Me Entertain You 클라이맥스에서는 로비가 자기 내면의 비평가들과 물리적으로 싸우는데, 과거의 자신들이 구체화된 침팬지 군단과의 전투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감정적으로 파괴적이다.
위대한 쇼맨의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답게, 음악과 서사의 결합이 단순한 배경 음악 이상으로 작동한다. 윌리엄스가 영화를 위해 곡들을 다시 녹음했고, 각 장면의 감정에 맞게 편곡을 조정했다. 음악이 서사의 도구가 되는 순간은 이 영화를 단순한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끌어올린다.
그러나 뮤지컬 시퀀스 사이의 드라마는 때때로 전기 영화의 익숙한 문법에 안주한다. 약물 남용, 재활, 재기의 사이클은 로켓맨이나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이미 본 구조이고, 135분의 러닝타임 중 중반부가 그 반복에 의해 처지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 비판의 진정성이 때로 자기 연민의 영역으로 미끄러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다음 뮤지컬 넘버가 시작되면 다시 화면에 못 박히게 된다.
자기혐오의 시각적 언어, 혹은 정직함의 대가
이 영화의 진정한 용기는 $110M 짜리 블록버스터에서 주인공을 원숭이로 만든 결정 자체에 있다. 그 선택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로비 윌리엄스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미국 시장에서, 무명의 영국 가수를 CGI 원숭이로 보여주겠다는 것은 상업적으로 자살에 가깝다. 실제로도 그랬다. 북미 박스오피스 $2M이라는 수치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상업적 실패는 역설적으로 영화의 진정성을 보증한다. 유산 관리를 위한 PR 프로젝트와 진정한 자기 성찰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그 영화가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 정직함을 허용하는가일 것이다. <베러맨>은 윌리엄스의 나르시시즘과 자기혐오가 동전의 양면임을 숨기지 않으며, 그 불편한 진실을 원숭이라는 시각적 은유 안에 담아 관객이 직시할 수 있게 만든다.
- CGI 침팬지라는 파격이 실제로 작동하며 장르의 가능성을 확장
- Rock DJ, Let Me Entertain You 등 뮤지컬 시퀀스의 기술적 수준이 경이적
- 자기 비판과 자기 연민 사이의 줄타기가 대부분의 전기 영화보다 정직
- 스티브 팸버튼, 앨리슨 스테드먼의 조연 연기가 감정적 중심을 지탱
- 135분의 러닝타임 중 중반부가 약물-재활 사이클의 반복으로 처짐
- 테이크 댓 멤버들과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화가 스톡 수준에 머무름
- 자기 비판이 때로 나르시시즘적 자기 연민으로 미끄러지는 순간들
- 로비 윌리엄스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는 초반 몰입 장벽이 존재
흥행이 증명하지 못한 것을 시간이 증명할 영화가 있다. 스트리밍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증명의 시작이다.
원숭이가 거울을 깨뜨릴 때
전기 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주인공을 사랑하는 영화와, 주인공을 이해하는 영화. <베러맨>은 후자에 속한다. 윌리엄스를 원숭이로 그리면서 그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의 결함을 전면에 놓는 이 영화는, 동시기에 개봉한 마이클과 정확히 반대 방향의 선택을 했고, 정확히 반대 방향의 결과를 얻었다. 비평가들의 찬사와 관객의 외면이라는 조합이다.
하지만 RT 89%와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후보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이 영화는 전기 영화라는 장르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주인공을 신화화하는 대신 해체하고, 관객에게 편안한 동일시를 제공하는 대신 불편한 거울을 들이대는 것. 그 거울이 원숭이 얼굴이라는 점은, 이 영화의 유머이자 비극이다.
4점이 아쉬운 영화가 아니라, 4점이 정확한 영화. 결함까지 포함해서 이 점수다.
침팬지라는 장치가 전기 영화에서 할 수 있는 것
전기 영화의 근본적 딜레마는 모방의 함정이다. 배우가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 관객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얼마나 닮았는가"에 고정되고, 캐릭터의 내면 대신 외형의 정확도가 평가 기준이 된다. 자파 잭슨의 마이클 잭슨, 오스틴 버틀러의 엘비스, 라미 말렉의 프레디 머큐리가 모두 이 프레임 안에 있다.
<베러맨>의 침팬지 장치는 이 함정을 원천 차단한다. 관객은 닮음을 비교할 대상이 없으므로, 캐릭터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침팬지라는 비인간 형상은 윌리엄스의 자기혐오를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전달한다. 턱시도를 입은 원숭이가 코카인 위에서 우는 장면은 대사 없이도 "나는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자기 인식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이 장치가 시사하는 것은, 전기 영화의 미래가 반드시 더 정확한 모방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로켓맨이 엘튼 존의 삶을 판타지 뮤지컬로 양식화했듯, <베러맨>은 시각적 은유를 통해 장르의 외연을 넓힌다. 상업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후보에 오른 것은, 산업이 이 실험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 전기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심 있는 분
- 뮤지컬 시퀀스의 기술적 야심에 흥분하는 분
- 자기 파괴적 정직함이 담긴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 로비 윌리엄스를 몰라도 괜찮은, 보편적 성장 서사를 원하는 분
- CGI 캐릭터에 감정 이입이 어려운 분
- 135분 동안 낯선 영국 가수의 이야기가 지루할 분
- 약물과 자기혐오 묘사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
-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편안한 환호를 기대하는 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기비판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가장 완벽한 후기일지도 모른다.
전기 영화의 주인공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그리는 시도, 더 많은 영화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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