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지만 사랑의 형태들, 원작과 뭐가 다를까? 몇부작·결말·등장인물 정리
요코하마 류세이가 한국 드라마를 다시 찍은 배경
2021년 JTBC에서 방영된 <알고있지만,>은 한소희와 송강이 주연을 맡은 웹툰 원작 드라마였습니다. 국내 시청률은 1%대로 높지 않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20여 개국 인기 순위에 오르면서, 방송 성적보다 스트리밍 성적이 훨씬 좋았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반응이 컸습니다. 방영 당시 일본 넷플릭스 종합 순위 2위까지 올랐으니, 3년 뒤 일본 제작진이 판권을 사서 직접 만들겠다고 나선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번 작품은 일본 OTT 플랫폼 ABEMA의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되어 2024년 12월 9일부터 30일까지 공개되었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배급되었습니다. 연출은 나카가와 류타로 감독이 맡았고, <신문기자>와 <빌리지>를 만든 후지이 미치히토가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업 로맨스보다는 인물의 내면을 오래 들여다보는 쪽에 강한 연출자라, 원작의 캠퍼스 로맨스 색깔이 상당히 달라지리라는 예상은 공개 전부터 나왔습니다.
주연은 요코하마 류세이입니다. 일본에서 이미 상위권 배우로 자리 잡은 그가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의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 자체가 국내에서도 기사화되었습니다. 상대역은 미나미 사라로, 모델 출신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연기 쪽 비중이 훨씬 커진 배우입니다. 무대는 서울의 대학 캠퍼스에서 가마쿠라로 옮겨졌습니다. 바다와 절이 함께 있는 이 도시는 일본 영화에서 ‘조용하지만 사연이 많은 곳’으로 자주 쓰이는데, 이 작품에서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가마쿠라 미술대학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하마사키 미우는 미술대학 조소학과 조교입니다. 지난 연애에서 크게 상처를 입은 뒤 연애를 접고 작업에만 몰두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입니다. 1화에서 그녀는 바에서 나비에 관한 책을 읽고 있고, 그 자리에 코사카 렌이 나타나 아무 설명도 없이 옆자리에 앉습니다. 렌은 스페인에서 돌아와 이 학교에 특별 임시 강사로 부임한 젊은 예술가입니다. 부임 첫날 학교 기물에 붉은 페인트를 끼얹는 것으로 존재를 알릴 만큼,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이름이 없습니다. 렌은 특정한 연인을 두지 않고,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미우는 그것을 알면서도 끌립니다. 제목 그대로 ‘알고 있지만’ 손을 뻗는 쪽을 택하는 셈입니다. 그 사이에 미우를 오래 지켜봐 온 이쿠시마 루키가 들어오고, 렌과 과거를 공유한 이마이 치아키가 자기 몫의 자리를 요구하면서 관계는 점점 복잡해집니다.
여기에 조소학과 사람들의 사연이 겹칩니다. 미술을 그만두고 광고 회사로 옮긴 선배 카와세 사키, 고백을 받고 마음이 흔들리는 학생 시이나 히카리, 창작과 삶 양쪽을 조용히 살펴 주는 교수들까지, 주변 인물들이 각자의 ‘사랑의 형태’를 하나씩 맡고 있습니다. 부제가 ‘사랑의 형태들’로 복수형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인공 두 사람만 따라가는 구조가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여러 사람의 어긋난 감정을 나란히 보여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31분짜리 8화가 만들어낸 것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입니다. 가마쿠라의 바다와 골목, 작업실의 먼지 낀 빛까지 색조가 일관되게 관리되어 있어서, 대사 없이 인물만 비추는 장면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각과 데생이 소품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로 쓰이는 것도 좋습니다. 미우가 무엇을 만드는지, 렌이 무엇을 그리는지가 두 사람의 심리를 대신 설명합니다. 마지막에 데생첩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는 순간, 앞의 여러 장면이 뒤늦게 의미를 얻습니다.
요코하마 류세이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안정적인 부분입니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인물은 자칫 ‘그냥 불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기 쉬운데, 그는 시선과 목소리의 온도만으로 방어와 결핍을 구분해 보여줍니다. 회당 31분이라는 짧은 길이도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습니다. 원작 10부작에서 늘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던 삼각·사각 구도의 지지부진한 구간이 이번에는 거의 없습니다. 전체 분량이 4시간 남짓이라 하루 이틀이면 완주할 수 있습니다.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두 가지
첫째, 중반까지는 답답합니다. 이 드라마는 인물의 감정을 대사로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미우가 왜 저 관계를 놓지 못하는지, 렌이 왜 저렇게 구는지에 대한 답은 7화와 8화에 몰려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현지 감상평에서도 ‘중간에 그만둘까 고민했는데 마지막 두 화에서 납득했다’는 반응이 자주 보입니다. 초반 세 화 정도는 설명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둘째, 주연 두 사람 외의 연기 편차가 있습니다. 요코하마 류세이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일부 조연이 같은 밀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또 한 가지, 국내 등급은 청소년 관람 불가입니다. 원작도 일부 회차가 19세 등급으로 편성됐던 작품이고 이번에도 애정 장면의 수위가 낮지 않으니, 함께 보는 자리나 소리를 켜 두는 환경은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 가마쿠라의 계절감과 작업실 질감을 살린 화면이 8화 내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 요코하마 류세이가 말수 적은 인물의 결핍을 표정과 목소리로 설계해 보여줍니다
- 조각과 데생이 장식이 아니라 감정을 대신 말하는 장치로 쓰입니다
- 회당 31분, 총 4시간 남짓이라 원작보다 훨씬 가볍게 완주할 수 있습니다
- 중반까지 설명을 아끼는 방식이라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주연과 일부 조연 사이의 연기 밀도 차이가 보입니다
- 애정 장면 수위가 있어 시청 환경을 고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끝까지 보게 될까
원작을 그대로 옮긴 물건을 기대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원작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 즉 남자 주인공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끝까지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채워 주는 지점이 분명 있습니다. 화려한 사건 없이 인물의 표정과 공간의 공기로 감정을 따라가는 방식을 좋아하는 분, 그리고 짧은 호흡의 일본 드라마 특유의 여백에 익숙한 분께 잘 맞습니다. 반면 사건이 계속 굴러가고 대사로 감정이 정리되는 전개를 선호한다면 중간에 멈추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줄인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남자 쪽으로 돌린 재구성입니다
10부작에서 8화로 줄었으니 압축판이라고 부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분량이 아니라 초점입니다. 원작이 유나비의 내레이션을 따라가며 ‘나는 왜 이 남자를 못 놓는가’를 묻는 구조였다면, 일본판은 같은 질문을 남자 쪽에서 되돌려 놓습니다. 마지막 화가 통째로 렌의 반생을 되짚는 데 쓰이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근거는 원작이 받았던 비판에 있습니다. 2021년 방영 당시 국내에서 가장 자주 나온 지적이 ‘남자 주인공의 서사가 끝까지 설명되지 않은 채 해피엔딩으로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선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결말 호불호로 이어졌습니다. 일본판은 바로 그 구멍을 메우는 데 후반부를 씁니다. 렌의 어머니가 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무용가로 설정되어 있고, 그가 어린 시절 어떤 관계 속에서 자랐는지가 후반에 드러납니다. 원작에는 없던 배치입니다.
인물의 나이대를 올린 것도 같은 방향입니다. 원작이 조소과 학부생들의 캠퍼스물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교와 임시 강사, 미술을 그만두고 회사로 간 선배가 중심에 섭니다. 학생 특유의 충동이 빠지고, 대신 ‘이 나이에 또 이러고 있다’는 자각이 들어옵니다. 부제가 복수형인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주변 인물들에게 각자의 사랑 형태를 하나씩 맡겨 두었기 때문에, 주인공 두 사람의 관계는 여러 사례 중 하나처럼 상대화됩니다.
물론 반론도 가능합니다. 남자 쪽 서사를 채우느라 미우의 갈등이 원작만큼 촘촘하지 않다는 지적이 실제로 나왔고, 그 결과 중반까지 여성 주인공이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인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국내 평점 사이트에서 박한 점수가 눈에 띄는 반면 해외 드라마 커뮤니티 점수는 7점대 중반으로 훨씬 후한데, 원작과 겹쳐 보느냐 아니냐가 이 격차를 상당 부분 설명합니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원작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에 가깝습니다. 두 편을 이어서 보면 같은 이야기가 두 사람의 시점으로 한 번씩 정리되는 셈입니다.
- 원작 <알고있지만,>을 보고 남자 주인공 쪽 사연이 궁금했던 분
- 사건보다 표정과 공간으로 감정을 읽는 방식을 선호하는 분
- 회당 30분대의 짧은 호흡으로 하루 만에 완주하고 싶은 분
원작을 본 지 오래됐다면, 이 작품을 먼저 보고 원작을 다시 여는 순서도 나쁘지 않습니다. 같은 대사가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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