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 리뷰 — 한국이 전 세계에서 제일 사랑한 뉴욕 음악 영화
더블린 골목에서 시작한 존 카니의 음악 영화가 뉴욕으로 무대를 옮겼다.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3)은 잃어버린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를 건져올리는 이야기다. 예산도, 스튜디오도 없이 뉴욕 거리 곳곳을 무대 삼아 앨범을 만드는 두 주인공의 여정. 한국 개봉 당시 《명량》과 《해적》에 치여 스크린 200개로 시작했지만, 입소문 하나로 342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전 세계 수익 중 한국이 41%를 차지했다. 그 어떤 나라보다 한국 관객이 가장 사랑한 음악 영화.
뉴욕 전체가 스튜디오였다 — 줄거리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오랜 연인이자 음악 파트너 데이브와 함께 뉴욕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 데이브는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고 스타가 되는 순간, 그레타 곁을 떠난다. 연인도, 창작 파트너도 잃은 그레타는 친구의 권유로 이스트 빌리지의 작은 바 무대에 억지로 오른다. 겨우 기타 하나 들고 부른 자작곡, 아무도 제대로 듣지 않는 그 공연 자리에.
그런데 그 자리에 댄(마크 러팔로)이 있었다. 음반사를 세운 공동창업자이지만 지금은 해고 통보를 받고 술에 취해 바를 방황하던 중년의 프로듀서. 그는 그레타의 노래를 듣는 순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귀가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악기도 없고, 밴드도 없고, 자본도 없다. 댄의 제안은 무모하다. 스튜디오 대신 뉴욕 전체를 녹음실로 쓰자. 옥상, 지하철 플랫폼, 공원, 골목 — 도시의 소음 위에 음악을 얹자.
그렇게 두 사람의 뉴욕 횡단 앨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댄은 각자의 인생에서 길을 잃은 음악가들을 하나씩 끌어모으고, 그레타는 조금씩 무대 위의 자신을 되찾아간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은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다.
뉴욕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다 — 장점
이 영화 최고의 아이디어는 뉴욕 자체를 스튜디오로 삼는다는 설정이다. 야외 녹음 장면들은 단순히 참신한 볼거리가 아니라 영화의 주제를 직접 형상화한다. 스튜디오 안에서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음악이 아니라, 삶의 공간 한가운데서 날 것으로 태어나는 음악. 브루클린 옥상에서 황혼을 배경으로 세션이 연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제일 빛나는 순간 중 하나다.
마크 러팔로의 연기가 이 영화의 무게중심이다. 루저의 외양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음악적 열망을 가진 댄은 코미디와 비극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오간다. 특히 그레타의 노래를 처음 듣는 장면에서 댄의 귀에 들리기 시작하는 상상 속 악기들이 하나씩 추가되는 연출은 음악 영화 역사에서 손꼽히는 장면이다 — 프로듀서가 음악을 듣는 방식을 이렇게 시각화한 영화는 거의 없다. 키이라 나이틀리 역시 전문 싱어는 아니지만 그 한계가 오히려 그레타 캐릭터의 진정성에 기여한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가 이 영화에 더 어울린다.
OST는 전작 원스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Lost Stars, A Step You Can't Take Back,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등 수록곡들은 스토리 안에서 기능하는 노래들이다. 특히 애덤 리바인이 부른 Lost Stars 버전과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부른 버전이 같은 곡인데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들린다는 점 — 이것이 이 영화가 음악으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아쉬운 점
원스와 비교하면 이 영화는 분명 더 크고 매끄럽다. 그리고 그 매끄러움이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한다. 원스의 거칠고 날 것 같은 진정성이 여기선 할리우드식으로 정제되어, 감정의 뾰족함이 다소 무뎌진다. 씨네21 전문가 평점이 5.6에 그친 이유가 여기 있다 — 관객은 열광했지만 평단은 좀 더 냉정했다. 그레타와 댄의 관계가 로맨스로 발전할 것 같은 암시를 계속 주면서 결말에서 그 방향을 틀어버리는 구조도, 호불호가 갈린다. 또한 데이브 캐릭터가 다소 단순하게 처리된 점, 댄 가족 서사가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 뉴욕 전체를 스튜디오로 쓰는 참신하고 아름다운 야외 녹음 컨셉
- 댄이 그레타의 노래를 처음 듣는 장면 — 음악 영화 명장면 반열
- Lost Stars를 비롯한 OST 전곡이 이야기 안에서 살아 작동함
- 마크 러팔로의 자연스럽고 입체적인 연기
- 원스를 보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완결된 이야기 구조
- 원스와 비교해 전반적으로 할리우드화된 매끄러움 — 날 것의 감이 줄어듦
- 그레타-댄 관계의 로맨스 암시와 결말 처리가 다소 어중간
- 데이브 캐릭터가 단순한 '악역' 구도로 소비됨
- 댄 가족 서사가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고 끝남
총평
비긴 어게인은 음악 영화가 대중에게 가장 넓은 문을 열 때 어떤 모양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스의 소박한 진정성에서 한 발 물러났지만, 그 대신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342만이라는 숫자는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원스(4.4)보다 0.3점 낮게 잡은 건 전문가적 완성도 차이를 반영한 것이지만, 대중성과 접근성만 놓고 보면 오히려 비긴 어게인이 더 많은 사람에게 먼저 추천할 작품이다.
원스와 비긴 어게인, 같은 질문의 두 가지 답
존 카니는 두 작품에서 동일한 질문을 한다. "음악 산업 바깥에서도 음악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 원스에서 그 답은 더블린 거리의 버스킹이었다 — 돈도 유통도 없이, 그냥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답. 비긴 어게인은 그 질문을 뉴욕이라는 훨씬 큰 무대, 음반 산업의 심장부에 갖다놓는다. 그리고 댄이라는 인물을 통해 같은 답을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 — 스튜디오 없이도, 레이블 없이도, 뉴욕 전체를 스튜디오로 만들면 된다.
영화 말미 그레타가 앨범을 스트리밍으로 1달러에 직접 공개하는 선택은 2013년 당시로서 상당히 급진적인 메시지였다. 메이저 레이블에 팔지 않고, 스스로 가격을 정하고, 직접 청중에게 내미는 것. 이는 단순한 플롯 선택이 아니라 음악 산업의 구조에 대한 존 카니의 발언이다. 원스가 "음악은 골목에도 있다"고 말했다면, 비긴 어게인은 "음악의 주인은 뮤지션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이 영화가 유독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산업적 성공보다 진정성을 택한 아티스트의 이야기, 홀로 서는 여성 창작자의 서사, 뉴욕이라는 공간이 주는 낭만 — 이 세 가지가 당시 한국 관객의 감수성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 인디·어쿠스틱 음악을 좋아하고 OST가 좋은 영화를 원하는 분
- 뉴욕의 낭만과 에너지를 스크린으로 느끼고 싶은 분
- 음악 영화 입문작을 찾는 분 — 장르 중 가장 접근하기 쉬운 작품
- 마크 러팔로 팬, 또는 진정성 있는 '중년 재기' 서사를 좋아하는 분
- 원스처럼 날것의 감성과 묵직한 여운을 기대하는 분
- 명확한 로맨스 결말을 원하는 분
- 음악 산업 비판이나 인디 뮤직 코드에 관심 없는 분
- 씨네21 전문가 평처럼 서사 완성도를 엄격하게 보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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