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어덜트 리뷰 — 성장하지 않은 여자의 귀환
그녀는 성장하지 않았다. 성장할 생각도 없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점에 대해 끝까지 관대해지지 않는다. 영 어덜트(Young Adult, 2011)는 반영웅 여성 캐릭터를 구원이나 교훈 없이 밀어붙인 거의 유일한 할리우드 코미디다. 불편함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오스왈트와 테론의 바 씬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살아있는 순간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그 불가능한 균형이 인상적이다.
37세, 고향 메르쿠리로 돌아가다
마비스 게리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청소년 소설 시리즈를 대필하며 혼자 산다. 이혼했고, 술을 마시고, 한때 자신이 쓰던 것과 같은 이름의 10대 주인공 '메이비스'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 버디에게서 신생아 딸 사진이 담긴 이메일을 받는다. 마비스는 이것이 버디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라 읽는다.
그녀는 고향 메르쿠리로 돌아간다. 버디는 행복하다. 아내 베스는 친절하다. 딸은 건강하다. 마비스는 이 모든 것이 착각이거나 연기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영화는 마비스가 자신의 망상을 관철시키려는 과정을, 웃기면서 불쾌하게 따라간다.
장르는 다크 코미디지만 웃음이 목적이 아니다. 마비스가 저지르는 행동들은 대체로 민망하고 때로 잔인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를 멀리서 비웃는 대신 무서울 만큼 가까이에서 따라다닌다. 관객은 마비스를 혐오하면서도 그녀의 논리 안에서 무언가를 알아보게 된다.
구원하지 않기로 한 용기
이 영화의 가장 급진적인 선택은 결말이다. 마비스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잠깐 인정하는 듯하다가 — 그 약한 순간을 더 큰 망상으로 덮어버린다. 다이아블로 코디와 레이트먼은 그것을 수정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이 성장하거나 화해하거나 용서받지 않고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영화는 그 드문 경우다.
패튼 오스왈트의 연기는 테론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 매트는 마비스와 정반대에 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결말에서 드러나는 그의 환상 또한 마비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덜 공격적일 뿐이다. 두 사람이 진실에 가장 가까이 가는 씬 — 매트의 집 지하실 장면 — 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베스와 버디 같은 주변 인물들은 마비스의 시선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마비스가 그들을 납작하게 보기 때문에 영화도 납작하게 그린다. 의도일 수 있지만, 그 납작함이 쌓이면 작품 전체의 깊이에 영향을 준다.
- 비공감 주인공을 끝까지 구원하지 않는 급진적 결말 — 할리우드 코미디의 규범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 샤를리즈 테론의 전신 투입 — 자기 인식 없는 나르시시스트를 혐오와 연민 사이에서 정밀하게 구현
- 패튼 오스왈트의 재발견 — 코미디언이 아닌 배우로서 테론과 대등한 무게를 가진다
- 다이아블로 코디 각본의 성숙 — 《준노》의 재기발랄함을 버리고 잔인한 정직함을 선택
- 마비스 외 인물들이 마비스의 시선 안에 갇혀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음
- 불쾌함이 설계된 것임을 모르면 완전히 거부감으로 끝날 수 있는 감상 리스크
- 중반부 반복되는 술집 씬들의 페이스가 다소 처짐
- 한국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어 접근성이 낮음
이 영화는 볼 때 불편하고 끝나도 개운하지 않다.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개운한 결말을 기대하며 봤다면 당연히 실망한다. 기대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이 전혀 다른 영화다.
이것이 코디-레이트먼 트리오의 가장 날카로운 작품이다
세 편을 다 보고 나면 《영 어덜트》가 트리오 중 가장 덜 사랑받으면서 가장 정직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준노》는 모두가 좋아했고, 《털리》는 감동을 줬다. 《영 어덜트》는 불편함을 줬다. 그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었다. 마비스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그녀를 보면서 무언가를 인식한다 — 자신 안의 성장하지 못한 부분, 혹은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부분을. 그것이 이 영화가 12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이유다.
인상 3.5는 낮은 점수가 아니다. 이 영화는 즐거움을 주려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의도대로 정확하게 불편했다는 뜻이다.
마비스는 '성장하지 않는 여자'가 아니라 '성장을 거부하는 여자'다 — 이 차이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할리우드 여성 영화의 문법은 거의 모두 성장, 화해, 수용을 향한다. 롬콤이든 드라마든 심지어 다크 코미디든, 주인공은 결말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영 어덜트》는 그 문법을 의식적으로 거부한다. 마비스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잠깐 인지하지만 — 매트의 집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 그 다음 날 아침 도리어 자신의 망상을 더 공고히 한다. 영화는 이것을 실패로 그리지 않는다. 단지 보여줄 뿐이다.
이 선택이 급진적인 이유는, 비공감 여성 주인공에게 구원을 주지 않는 것이 관객의 적대감을 그대로 떠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 어덜트》의 관객 반응은 비평과 달리 차가웠다. 많은 관객이 마비스가 혐오스럽다고 보고 영화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 반응 자체가 영화가 노린 것이다. 마비스를 혐오하는 관객은 동시에 자신이 그녀의 어떤 부분을 알아봤기 때문에 불편했던 것이다.
코디는 이 각본을 쓰면서 자신이 언론에서 자주 받은 질문 — "왜 당신은 어른 이야기를 못 쓰냐"는 질문 — 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마비스는 청소년 소설을 대필하며 사는 37세 여자다. 코디는 그 이미지를 비틀어, 세상이 '성장 못 한 여자'로 낙인찍는 사람이 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집요하게 지키는 사람일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 다크 코미디의 규칙을 아는 분 — 불편함이 설계된 것임을 알고 보면 완전히 다른 영화
- 샤를리즈 테론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고 있는 분
- 구원 없이 끝나는 인물 연구 영화를 즐기는 분
- 레이트먼-코디 트리오 3부작 전부를 보고 싶은 분
- 주인공에게 공감하거나 응원할 수 있어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분
- 결말에서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분 — 이 영화에는 없다
- 빠른 전개와 사건 중심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
- 스트리밍 없이 유료 구매가 부담스러운 분
마비스는 고향을 떠나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본 우리는 달라졌다. 그게 이 영화가 하는 일이다.
당신 안에도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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