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매싱 머신 후기 — 드웨인 존슨은 해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
드웨인 존슨이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이 영화 전에는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없었다. 베니 사프디가 그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됐는지 — <더 스매싱 머신>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진지한 대답이다. 다만 영화 자체가 거기서 멈추는 게 문제다.
존슨이 마약에 취해 소파에 앉아 TV를 멍하니 보는 장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기가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990년대 말 UFC, 가장 강한 자의 가장 조용한 붕괴
마크 커는 1997년 인터뷰를 받는 장면으로 영화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왜 UFC 최강자인지를 설명하는데, 그 말투가 놀랍도록 부드럽다.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그냥 이긴다. 사프디는 이 인물에서 사프디 형제 특유의 자기 과신 주인공 — 코니, 하워드, 마티 — 과는 전혀 다른 결을 찾아냈다. 마크는 확신이 아니라 고요함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 고요함 안에 중독이 자란다.
영화의 갈등은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MMA 무대 위에서의 경쟁과 몰락 — 일본 프라이드 FC로 건너가 새로운 규칙 아래 자신의 기술이 무력화되는 경험. 다른 하나는 링 밖에서의 관계 드라마 — 돈과의 사랑과 갈등, 오피오이드 의존의 심화. 사프디는 이 두 축을 교차하면서 마크라는 인물을 둘러싸지만, 그 중심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체감은 <더 레슬러>보다 조용하고, 사프디 형제의 전작들보다 느리다. 사프디 영화 특유의 숨막히는 긴장 대신 멜랑꼴리한 일상의 반복이 있다. 이것이 의도적인 선택임은 분명하지만, 관객에 따라 가장 큰 아쉬움이 될 수도 있다.
16mm와 VHS로 되살린 1990년대의 질감
이 영화의 가장 명확한 성취는 시각 언어다. 16mm 필름을 기본으로 하고, 일부 장면에 70mm와 VHS 카메라를 섞은 촬영은 1990년대 미국의 특정한 감촉을 정확하게 재현한다. 프라이드 FC의 링 위에서 마크와 상대가 뒤엉키는 장면들은 그 시절의 격투 영상을 직접 보는 것 같은 밀착감을 준다. 날라 시네프로의 재즈 스코어는 독특한 선택인데 — 단조롭고 아름다운 멜랑꼴리가 마크의 정서와 잘 맞지만, 때로 극적인 순간을 오히려 무디게 만드는 역효과도 있다.
존슨의 육체적 변신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스테틱을 포함한 외모 변환은 아카데미 분장상 노미네이트를 받았고, 근육을 줄이고 체형을 바꾼 존슨의 노력은 눈에 보인다. 그러나 평론가들이 지적하듯 프로스테틱이 연기보다 많은 일을 하는 순간들도 있다. 존슨의 연기 자체 — 특히 취약함을 감추려는 마크의 작은 행동들 — 는 진짜인데, 가끔 분장이 그것을 앞서버린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설적으로 원작에 대한 충실함이다. 사프디는 존 하이암스의 2002년 다큐멘터리를 거의 그대로 옮겼다. 많은 장면, 대사, 심지어 몸짓까지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영화는 마크 커라는 인물의 초상 위에 자신만의 시선을 얹지 않는 — 관점 없는 재현이 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드웨인 존슨의 커리어 최고 연기 — 조용하고 취약한 인간을 연기하는 새로운 존슨
- 16mm·VHS·70mm 혼합 촬영 — 1990년대 격투 씬의 질감을 물리적으로 재현
- 날라 시네프로의 재즈 스코어 — 느리고 아름다운 멜랑꼴리가 작품의 정서와 공명
- 베니 사프디의 연출 — 과장 없이 인물 주변의 일상적 디테일을 쌓아 올리는 방식
- 원작 다큐멘터리에 지나치게 충실해 영화만의 시선이 부족하다는 비판
- 마크 커라는 인물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싸우는지가 끝까지 명확하지 않다
- 에밀리 블런트의 돈 — 극 중 비중에 비해 인물 탐구가 얕다
- 두 마크의 관계에 공들인 만큼, 그 결말이 역사적 사실에 묶여 납득하기 어렵다
베니스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흥행은 처참히 실패했다. 이 두 사실이 동시에 성립하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조금은 알 것 같다.
베니 사프디의 첫 독주, 그 자체로 흥미로운 시작
사프디 형제가 각자의 길로 갔다. 조쉬는 <마티 슈프림>에서 멈추지 않는 야망의 인물을 만들었고, 베니는 이 영화에서 멈춰버린 인간을 그렸다. 두 영화를 나란히 보면 형제가 얼마나 다른 것을 보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더 스매싱 머신>은 미완성이거나 절제된 영화다 — 어느 쪽으로 볼지는 관객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베니 사프디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었는지가 이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숫자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존슨의 연기 4.5는 기준을 바꾸는 종류의 점수다 — 앞으로 이 배우를 다시 볼 것이니까.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전기 영화일 수 있는가
베니 사프디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존 하이암스의 2002년 다큐멘터리
전기 영화의 딜레마는 언제나 이것이다 — 역사적 사실에 충실할수록 극의 논리에서 멀어진다. 사프디는 이 딜레마를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선택했다. 두 마크(커와 콜먼)의 관계가 영화 전체에 걸쳐 결정적 대결을 향해 쌓여가지만, 역사는 그런 극적 결말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프디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고 — 그것이 어떤 관객에겐 정직함으로, 다른 관객에겐 미완성으로 읽힌다.
이 선택의 정당성은 결국 마크 커라는 인물 자체가 얼마나 흥미로운가에 달려 있다. 조쉬가 만든 마티처럼 관객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인물이라면 관점의 부재가 덜 보인다. 하지만 마크는 고요하고 내성적이다 — 그것이 존슨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영화가 그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멈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 드웨인 존슨의 연기 변신이 궁금한 분 —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다
- 사프디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고 베니의 단독 행보가 궁금한 분
- 1990년대 MMA·UFC 역사에 관심 있는 분
- 느리고 멜랑꼴리한 전기 영화, 인물 주변을 조용히 관찰하는 영화를 선호하는 분
- 명확한 서사 구조와 극적 해결을 원하는 분 — 열린 결말이 불만족스러울 수 있음
- 사프디 특유의 카오틱한 에너지를 기대하는 분 — 이 영화엔 그것이 없다
- 격투·약물 묘사에 민감한 분 (R등급)
- 주인공의 내면이 명확히 파고들어지는 영화를 원하는 분
사프디 형제가 각자의 영화를 같은 해에 내놓았다. 둘을 나란히 보는 것이 이 영화를 혼자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준다.
마티 슈프림과 이 영화, 둘을 보고 나서 어느 사프디의 다음 작품이 더 기다려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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