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1인 7역 킬미힐미 몇부작? 일곱 인격 정리와 지금 볼 수 있는 OTT
한 배우가 일곱 명을 연기하면 벌어지는 일
2015년 초 안방극장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린 이름은 단연 지성이었습니다. 평소엔 무미건조한 모범생 재벌 3세였다가,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으면 가죽 재킷의 반항아가 되고, 다음 회에는 분홍색 가디건을 입은 아이돌 덕후 여고생이 되어 나타납니다. 같은 얼굴인데 말투, 걸음걸이, 눈빛까지 전부 다른 사람입니다. 방송 당시 본방 시청률은 10% 초반대로 압도적이라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인터넷과 SNS에서의 화제성은 그 수치를 한참 웃돌았습니다. 특히 여고생 인격 '안요나'가 등장한 뒤로는 매주 방송일마다 관련 게시물이 커뮤니티를 뒤덮었습니다.
화제성의 또 다른 축은 동시간대 맞대결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SBS에서 현빈 주연의 '하이드 지킬, 나'가 방영됐는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로맨스였습니다. 같은 소재의 두 드라마가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붙는 보기 드문 상황이었고, 결과는 이쪽의 완승이었습니다. 이 대결 이야기는 아래 분석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일곱 인격과 비밀 주치의 — 줄거리와 인물 관계
차도현(지성)은 대기업 승계 서열에 있는 재벌 3세입니다. 어린 시절 겪은 의문의 화재 사고 이후 기억 일부를 잃었고, 그 빈자리에 여섯 개의 다른 인격이 자리 잡았습니다. 해외에서 몰래 치료를 받으며 지내던 그는 다른 인격이 벌인 사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정신과 레지던트 1년 차 오리진(황정음)을 만나 그녀에게 비밀 주치의가 되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회사와 집안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는 병을 안고, 도현은 리진의 도움으로 인격들이 나타나는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인격들을 만날수록 이상한 점이 드러납니다. 인격들은 무작위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각자 도현이 감당하지 못한 감정 하나씩을 대신 짊어진 존재들이고, 그 뿌리를 따라가면 도현의 어린 시절 — 그리고 리진 남매의 과거와도 연결된 사건이 나옵니다. 리진의 쌍둥이 오빠이자 추리소설 작가인 오리온(박서준)은 도현 일가에서 벌어진 의문의 죽음을 독자적으로 조사하고 있어서, 세 사람의 동선은 같은 진실을 향해 좁혀집니다. 로맨스와 코미디로 출발한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가족 미스터리이자 치유의 드라마로 무게를 옮겨 가는 구조입니다.
인격 하나하나가 전부 주연급 캐릭터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일곱 인격을 '증상'이 아니라 각자 완결된 캐릭터로 세워 놓은 점입니다. 신세기는 도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분노이고, 안요섭은 끝내려는 마음, 안요나는 잊고 웃어 버리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인격이 하나씩 도현과 융합되어 사라질 때마다 코믹한 작별이 아니라 한 인물과의 이별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후반부 인격들이 차례로 떠나는 구간은 방영 당시에도 시청자들을 가장 많이 울린 대목으로 꼽혔습니다. 장재인이 부른 OST '환청'은 지금도 드라마 OST 명곡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점
밝은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야기의 뿌리는 아동 학대입니다. 인격이 생겨난 원인을 파고드는 후반부에는 어린아이가 겪는 학대 장면이 직접적으로 그려지고, 자해를 암시하는 인격의 사연도 나옵니다. 가볍게 웃으며 보다가 후반부의 무게에 당황하는 분들이 방영 당시에도 적지 않았으니, 이 점은 감안하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또 하나, 다중인격(해리성 정체감 장애)이라는 소재 자체가 의학적 고증보다 드라마적 상상력 쪽에 무게를 둔 설정이라는 점도 미리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실제 질환의 묘사라기보다는 '상처와 치유'를 그리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 지성의 1인 7역 — 인격마다 말투·표정·몸짓이 완전히 달라, 같은 배우라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 코미디·로맨스·미스터리의 완급 조절이 좋아 20부가 늘어지지 않습니다
- 인격들과의 이별로 풀어내는 후반부 감정선과 OST '환청'의 여운
- 후반부에 아동 학대 묘사가 직접적으로 등장합니다 — 가볍게만 보긴 어려운 작품입니다
- 다중인격 설정은 의학적 사실성보다 드라마적 장치에 가깝습니다
10년이 지나도 다시 찾게 되는 이유
방영 당시의 화제성만으로 남은 작품이었다면 지금까지 회자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드라마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상처 치유의 가장 강력한 백신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일곱 인격은 결국 한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낸 방패들이고, 드라마는 그 방패들을 하나씩 안아 주며 내려놓게 합니다. 웃긴 장면을 보러 들어왔다가 마지막엔 위로를 받고 나가게 되는 구성이라, 화려한 설정에 비해 뒷맛은 의외로 따뜻합니다. 1인 다역 연기의 교과서 같은 작품을 찾는 분에게도, 힐링 서사를 찾는 분에게도 각자 다른 가치가 있는 드라마입니다.
'하이드 지킬, 나'와의 맞대결은 소재가 아니라 설계의 승부였습니다
2015년 초 수목극 편성표는 드라마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그림이었습니다. MBC에서는 이 작품이, SBS에서는 현빈 주연의 '하이드 지킬, 나'가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방영됐는데, 두 작품 모두 다중인격 재벌 남자와 그를 치유하는 여자의 로맨스였습니다. 군 제대 후 복귀작인 현빈이라는 화제성까지 더해, 방영 전 예상은 오히려 SBS 쪽 우세였습니다.
뚜껑을 열자 흐름은 빠르게 기울었습니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으로 이 작품은 8회에 자체 최고 11.5%를 찍으며 수목극 1위를 지킨 반면, '하이드 지킬, 나'는 종영 무렵 3.9%까지 내려갔습니다. 같은 소재였는데 왜 결과가 갈렸을까요. 가장 큰 차이는 인격을 다루는 설계였습니다. 저쪽이 두 인격의 대비라는 고전적 구도에 머문 반면, 이쪽은 일곱 인격 각각에 사연과 매력을 부여해 매주 '다음 인격은 언제 나오나'라는 기대를 만들었습니다. 인격 자체가 회차를 끌고 가는 동력이 된 겁니다.
각본의 체급 차이도 있었습니다. 극본을 쓴 진수완 작가는 '해를 품은 달'로 이미 멜로와 미스터리를 엮는 솜씨를 증명한 작가였고, 이 작품에서도 코미디로 문을 열어 가족 비극으로 닫는 완급을 정확하게 운용했습니다. 웃기는 회차와 우는 회차가 번갈아 배치되어 시청자가 지칠 틈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 승리를 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청률 자체는 10% 초반대로, 같은 해 종영한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게 막판 동시간대 1위를 내주기도 했습니다. 본방 수치보다 SNS 화제성이 압도적이었던, 요즘 기준으로 보면 'OTT형 흥행'을 미리 보여 준 작품에 가깝습니다. 그 화제성은 국경도 넘어, 2018년 중국에서 '칠개적아(七个我)'라는 제목의 리메이크가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같은 소재 대결의 승패는 결국 소재가 아니라 그 소재를 몇 명의 살아 있는 인물로 바꿔 내느냐에서 갈렸다는 것 — 이 맞대결이 남긴 교훈입니다.
- 배우의 연기 변신 자체를 즐기는 분 — 1인 다역의 기준점 같은 작품입니다
- 웃다가 울게 되는 완급 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찾는 분
- 상처와 치유를 다루는 힐링 서사를 좋아하는 분
마지막 인격이 작별 인사를 건네는 순간, 이 드라마가 왜 힐링 드라마로 불렸는지 알게 됩니다. 다 보고 나면 한동안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