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붉은 돼지, 포르코는 왜 돼지가 되었을까? 결말 해석과 넷플릭스 시청 정보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를 위해 만들었다"고 말한 이유
지브리 작품 대부분이 아이와 가족을 향해 있다면, 이 영화는 방향이 다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을 두고 "지쳐서 뇌세포가 두부가 된 중년 남자를 위한 만화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소년도 소녀도 아닌, 전쟁에서 친구들을 잃고 세상에 등을 돌린 중년 비행사입니다. 원래는 일본항공 기내 상영용 30~40분짜리 중편으로 기획됐는데, 제작 중 유고 내전과 소련 붕괴 같은 세계 정세 변화를 지켜보며 내용이 깊어졌고 결국 93분짜리 극장 장편으로 완성됐습니다.
출발점이 기내 상영용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원작은 미야자키 감독이 잡지 「모델 그래픽스」에 연재하던 만화 「비행정 시대」로, 비행기를 다룬 작품이니 항공사 승객에게 보여주자는 발상에서 일본항공과 손을 잡았고, 일본 최초의 기내 상영용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로 시작됐습니다. 만들다 보니 분량이 계속 늘어 결국 극장 개봉작이 된 셈입니다.
배경이 이탈리아 아드리아해이고 동양적인 색채가 거의 없어서, 지브리 작품 중에서도 서구권에서 유독 평가가 높은 편입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96%라는 수치가 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국내에서는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라는 명대사로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결심을 말할 때마다 패러디되는 이 대사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인용되고 있습니다.
돼지가 된 비행사, 무엇을 지키며 사는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이탈리아. 전쟁에서 전우들을 잃은 공군 에이스 마르코 파고트는 어떤 이유에선지 돼지의 모습이 된 채, '포르코 로소'라는 이름으로 아드리아해의 하늘 도적들을 잡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갑니다. 국가에도 파시즘에도 얽매이지 않고, 무인도에 홀로 살며 가끔 어릴 적 친구 지나가 운영하는 호텔 아드리아노에 들르는 것이 그의 일상입니다.
포르코에게 번번이 당하던 공적 연합은 미국인 파일럿 도널드 커티스를 용병으로 고용합니다. 커티스의 기습으로 비행정이 크게 파손된 포르코는 밀라노의 단골 정비소 피콜로사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사장의 손녀이자 17살 설계 주임인 피오를 만납니다. 피오가 새로 설계한 비행정과 함께 은신처로 돌아온 포르코는 커티스와 자존심을 건 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승부에 걸린 것은 비행기 수리비, 그리고 피오의 미래입니다.
30년이 지나도 낡지 않은 하늘의 낭만
이 작품의 힘은 무엇보다 비행 장면에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항공기 산업과 인연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하늘을 동경했고, 그 애정이 화면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등장하는 비행정 대부분이 실존 기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라 기계 묘사의 밀도가 남다릅니다.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 위를 붉은 비행정이 가르는 장면은 지금 봐도 색감이 선명합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극 중 지나가 부르는 샹송과 엔딩곡을 성우 카토 토키코가 직접 불러, 음악이 이야기 바깥의 장식이 아니라 인물의 목소리로 극에 녹아 있습니다. 유머도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후반부 결투가 흘러가는 방식은 비장할 것 같던 예상을 유쾌하게 비껴갑니다.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점
어린이 관객을 우선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은 감안하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전쟁의 상흔, 파시즘 치하의 시대 분위기, 중년의 체념 같은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 화려한 판타지나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이 영화는 설명을 아끼는 작품입니다. 포르코가 왜 돼지가 되었는지,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직접 말해주지 않습니다. 여백을 즐기는 분에게는 미덕이지만,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분에게는 아쉬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 실존 기체를 바탕으로 그린 비행정과 공중전 묘사의 밀도
-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성우가 직접 부른 극 중 노래의 조화
- 중년의 쓸쓸함과 유머가 공존하는, 지브리에서 보기 드문 어른의 정서
- 전개가 잔잔한 편이라 화려한 판타지를 기대하면 심심할 수 있습니다
- 주인공의 변신 이유와 결말을 직접 설명해주지 않는 열린 구성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작품인가
이 영화는 지브리 입문작으로 흔히 꼽히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브리를 어느 정도 본 뒤에 만나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 작품이 되곤 합니다. 소년 소녀의 모험이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을 잃어본 사람이 그럼에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일에 지친 날, 93분이라는 부담 없는 길이 안에서 하늘의 낭만과 조용한 위로를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어 접근성도 좋은 편입니다.
변신의 이유를 숨긴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답입니다
영화는 포르코가 돼지가 된 경위를 끝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작중 단서는 "스스로 마법을 걸었다"는 모호한 언급 정도입니다. 언뜻 불친절해 보이지만, 이 침묵은 계산된 것입니다. 변신이 초자연적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선택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입니다.
근거는 극 중에 흩어져 있습니다. 포르코가 피오에게 들려주는 1차 대전 회상 장면에서, 그는 전우들이 모두 격추되는 가운데 혼자 살아남습니다. 이후 그는 애국 채권을 권하는 말에 "그딴 건 인간들끼리 실컷 하라"고 답하며 자신을 인간과 뚜렷이 구분 짓습니다. 전쟁에서 친구를 잃고, 파시즘으로 치닫는 조국에 실망한 남자가 인간이기를 스스로 그만둔 것입니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낫다"는 대사는 이 선택의 선언문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모습이 잠깐 비치는 순간들도 이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피오 앞에서 진심을 드러낼 때, 포르코의 얼굴은 한순간 인간으로 보입니다. 마법의 열쇠가 외부의 주문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얼굴을 본 커티스가 놀라 쫓아가는 연출,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지나의 정원 부두에 붉은 비행정이 계류돼 있는 장면은, 그가 인간으로 돌아갔고 지나의 내기가 결실을 맺었으리라는 힌트로 널리 읽힙니다.
물론 반대 시각도 있습니다. 감독 본인은 인간으로 돌아와도 곧 다시 돼지로 변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적이 있어서, '완전한 회복'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마법이 풀렸느냐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 등을 돌린 사람도 누군가의 진심 앞에서는 다시 인간의 얼굴을 보인다는 사실 쪽에 가깝습니다. 결말을 숨긴 것이 아니라, 답을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긴 셈입니다.
- 어른의 정서가 담긴 지브리 작품을 찾고 있는 분
- 비행기, 기계, 하늘 풍경 묘사에 설레는 분
- 일과 삶에 지쳐 잔잔한 위로가 필요한 날의 한 편을 고르는 분
멋이란 이런 것이라고, 돼지의 얼굴을 한 남자가 하늘에서 말합니다. 다 보고 나면 한동안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