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 후기 — 장동윤 감독 데뷔작, 막걸리로 쓴 신념의 이야기

누룩 포스터

누구에게나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 배우 장동윤이 처음 메가폰을 잡은 〈누룩〉은 막걸리집 딸이 사라진 누룩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를 통해 바로 그 '나만 아는 소중함'에 대해 말한다. 따뜻한 휴머니즘을 표방하지만 완성된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서늘하고 모호하다. 90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 속에 발효의 시간이 제대로 채워졌는지, 솔직하게 풀어 본다.

한국 독립영화
THE YEAST
누룩
누룩 · 2025
감독 장편 데뷔작
장르
가족 미스터리 · 휴머니즘 드라마
개봉
2026.04.15 · 메가박스 단독
러닝타임
약 90분 · 15세이상관람가
원작
오리지널 각본 (장동윤)
주연
김승윤 · 송지혁 · 박명훈
감독
장동윤
국내 시청 메가박스 단독 상영 중
외부 평점
씨네21 5.00 / 10 평론가 1인 집계 초기
연기
1
다슬 김승윤
열여덟, 양조장 집 외동딸. 남들은 그까짓 누룩이 뭐냐고 하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직접 트럭을 몰고 배달을 다니며 술잔을 홀짝이는 기묘한 안정감이, 배우의 나이 가늠 어려운 얼굴 위에서 서서히 무너진다.
2
다현 송지혁
다슬의 오빠. 무뚝뚝하고 한량 같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동생의 '이상한 집착'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 걱정을 짜증과 통제로 왜곡해 표현하는, 한국 남매 관계의 익숙한 초상.
3
아버지 박명훈
양조장을 지키는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딸의 세계를 꺾지 않고 기다린다. 〈기생충〉의 근세를 떠올리게 하는 고요한 무게감이, 이번에는 '부재로 가득한 존재감'으로 번역된다.

김승윤이 아니었다면 이 캐릭터는 아예 성립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박명훈은 적게 말할수록 커지는 배우라는 걸 또 한 번 증명한다.

사라진 누룩, 사라지지 않는 믿음

경상도의 어느 작은 마을. 동네 사람들만 아는 소문난 양조장 집 딸 다슬은 열여덟 살이지만 또래 친구들보다 막걸리를 더 사랑한다. 직접 누룩을 만지고, 직접 트럭을 몰아 배달을 다닌다. 어른들이 눈살을 찌푸리든 친구들이 수근거리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녀에게 누룩은 집안의 생계이자 자기 자신의 중심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막걸리 맛이 미묘하게 바뀐다. 원인은 사라진 누룩. 다슬은 그 잃어버린 한 덩어리를 되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앓아눕고 괴팍해져 가는 그녀를 '이상한 아이'로 본다. 오빠 다현은 동생의 집착을 꺾으려 하고, 아버지는 묘하게 태연하며, 마을 한구석의 걸인 무리는 왠지 예사롭지 않다. 모두가 다슬을 바라보지만, 정작 다슬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휴머니즘 드라마를 표방하는 보도자료와 달리, 영화는 예상보다 한 발 더 어둡고 불투명한 쪽으로 걸어간다. 은은한 미스터리 톤이 깔리고, 시골의 고요가 이따금 오싹해진다. 〈곡성〉의 서늘함까지는 아니어도, 같은 한국의 향토 공간을 낯선 감각으로 비추려는 시도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비친다.

배우의 얼굴들이 빚어내는 향

〈누룩〉의 가장 강한 재료는 단연 배우다. 김승윤은 나이 가늠이 어려운 묘한 얼굴로 다슬의 열여덟을 설득한다. 교복을 입고 트럭 운전대를 잡는 이 소녀가 이상하면서도 이상하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배우의 고요한 안정감이 캐릭터의 기벽 위를 덮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 출신 배우가 만든 현장이라 디렉션이 디테일하고 직관적이었다는 배우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호흡의 길이와 눈의 깜빡임 하나까지 공들여진 인상이다.

박명훈은 또 한 번 적확하다. 이해할 수 없는 딸을 꺾지 않는 아버지, 그 선택 자체가 이 영화의 주제다. 송지혁의 오빠 다현은 가장 '일상적인' 질감을 담당한다. 왜곡된 걱정과 짜증이 뒤섞인 남매 케미는 관객이 비로소 웃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숨구멍이기도 하다. 경주와 영덕에서 찍었다는 양조장과 시골집의 질감, 작은 창문으로 포근하게 새어 드는 햇빛은 이승빈 촬영감독의 공이 크다. 이 풍경만큼은 영화의 불친절함을 끝까지 견디게 해 주는 힘이 있다. 다만 이 매력들이 모여도, 마지막 관문은 결국 이야기 자체다.

누룩 영화 속 장면

발효가 덜 된 서사

문제는 영화가 택한 '비유의 영화' 전략이 러닝타임 안에서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독은 누룩을 '믿음의 대상'에 대한 은유로 놓고 출발했지만, 관객이 그 은유를 따라가기엔 중간 다리가 너무 많이 생략되어 있다. 왜 다슬이 그렇게까지 누룩에 매달리는지,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앓는 장면의 층위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심상인지, 갑작스레 암전되거나 분위기가 바뀌는 몇몇 전환이 정서적 충격인지 장르적 장치인지—영화는 그 선을 분명히 그어 주지 않는다.

휴머니즘으로 시작해 미스터리 스릴러의 질감을 얹고, 그 위에 사회적 상징까지 걸치려다 보니 어느 쪽에도 온전히 닿지 못한 느낌이 남는다. 90분이라는 길이는 이 세 겹을 모두 소화하기에 짧고, 결국 영화의 마지막 인상은 "감독의 진심은 알겠다"와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팬데믹 시기 사스 김치 일화에서 출발한 블랙코미디가 어느 순간 휴머니즘으로 선회했다는 감독의 회고가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경로 불안을 설명하는 듯도 하다.

+
Good
  • 김승윤의 나이 가늠 어려운 얼굴이 다슬이라는 기묘한 캐릭터를 성립시킨다
  • 박명훈의 과묵한 아버지 연기가 영화의 정서적 무게추 역할을 해낸다
  • 경주·영덕에서 포착한 시골·양조장의 빛과 공기가 독립영화 특유의 질감을 품고 있다
  • '남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나만의 신념'이라는 주제 자체가 보편적으로 와닿는다
-
Bad
  • 은유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 서사적 개연성이 자주 끊긴다
  • 휴머니즘·미스터리·사회 상징 사이를 오가다 어느 톤에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다
  • 90분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체감 속도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다
  • 집단 발병·걸인 무리 등 일부 설정이 기능적 설명 없이 분위기용으로만 소비된다

이상하게도, 극장을 나오고 며칠 지난 뒤에 다슬의 뒷모습만 남아 가끔 떠오른다. 영화가 설득에 실패했더라도 이미지 하나쯤은 남겼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만 의미 있는 영화

감독의 말처럼, 누룩은 결국 '누군가에게만 의미 있는 무언가'의 은유다. 재미있는 역설은 이 영화 자체가 바로 그런 작품이 됐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완성도와 관계없이 김승윤의 얼굴만으로 충분하고, 누군가에게는 끝내 납득되지 않는 90분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 독립영화의 신진 감독이 가진 고집을 존중하고 싶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비유의 영화'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다리들을 조금 더 놓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발효는 결국 시간이 하는 일이고, 이 감독의 시간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믿고 싶다.

My Rating
누룩
3.0
/ 5.0
인상
2.5 느린 호흡
스토리
3.0
연기
3.5
영상미
3.5
OST
3.0
몰입도
2.5

숫자는 미지근하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당신의 누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은 한참 오래 남는다.

문화 맥락 Analysis

한국적 재료로 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의 알레고리

〈누룩〉의 출발은 팬데믹이었다. 감독은 사스 유행기에 돌았던 "김치를 먹으면 낫는다"는 민간 속설을 떠올리며,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발효 식품 중 하나인 막걸리가 어떤 질병이라도 치료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블랙코미디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이 출발점이 중요하다. 누룩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도 공동체가 오래 붙들고 살아온 어떤 믿음'의 한국적 번역어로 쓰인다. 다슬이 누룩의 특별함을 증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확신하는 방식은, 한국 사회가 장독대·된장·김치 같은 발효 문화에 부여해 온 비합리적 신뢰와 겹친다. 영화가 다슬을 '정신병'과 '특별한 아이' 사이 어디쯤에 매달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관객이 그녀를 어느 쪽으로 읽느냐가 곧 자신의 세계관 진술이 된다.

문제는 알레고리가 현실의 결을 잃지 않으려면 공동체의 구체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마을은 상징으로는 작동하지만 실제 삶의 공간으로서는 성기게 남는다. 한국적 재료를 고른 선택은 탁월했으나, 그 재료가 발효될 시간과 살이 아직 덜 붙었다는 인상이 남는 이유다.

이 작품, 나한테 맞을까?
O  이런 분께 추천
  • O  한국 독립영화의 향토적 질감과 느린 호흡을 좋아하는 분
  • O  김승윤·박명훈의 조용한 연기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분
  • O  '이해할 수 없어도 존중할 수 있다'는 질문에 끌리는 분
  • O  배우 장동윤의 연출적 선택 과정 자체가 궁금한 분
X  이런 분은 패스
  • X  명확한 인과와 깔끔한 결말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분
  • X  '은유는 은유일 뿐'이라는 말에 답답함을 느끼는 분
  • X  장르 스릴러의 정통 쾌감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가는 분
  • X  양조장·발효 소재 자체에 흥미가 없는 분
"
믿음은 설명할 수 없어서 아름답지만, 영화는 끝내 조금 더 설명해 주어야 했다
배우 장동윤의 연출 데뷔가 남긴 향과 빈틈을 동시에 맛보고 싶은 관객에게
#장동윤감독데뷔작 #김승윤 #한국독립영화 #메가박스단독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극장을 나오자마자 나는 내 안의 누룩이 무엇인지부터 셈하고 있었다. 그 자체로 이 영화는 자기 몫을 한 셈인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는 남들은 고개를 갸웃하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는 '누룩' 같은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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