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퍼 후기 — 84분 안에 슬픔과 웃음과 따뜻함을 압축한 인디 영화
8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요즘 영화 기준으로 짧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부족하다는 생각보다 잘 마무리됐다는 느낌이 먼저 온다. 지방이 없다는 표현이 있다 — 《스크래퍼》는 정확히 그런 영화다. 이스트 런던의 파스텔 색 골목에서 12살짜리 아이가 혼자 자전거를 훔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슬픔을 떼쓰는 방식이 아니라 눈 비비며 살아가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롤라 캠벨은 연기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카메라 앞에서 계산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전거 도둑과 뒤뜰에서 넘어온 낯선 사람
조지는 혼자다. 엄마 비키가 죽은 후 복지사 눈을 피하기 위해 동네 편의점 직원의 목소리를 녹음해 가짜 삼촌 '윈스턴 처칠'로 위장하고, 친구 알리와 함께 자전거를 훔쳐 팔며 생활비를 번다. 집은 엄마가 살던 그대로다. 조지는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 다섯 단계 애도 프로세스를 진행 중이라고, 아주 자신 있게.
그런 조지의 뒤뜰 담장을 넘어 제이슨이 나타난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버지다. 조지는 당연히 내쫓으려 하지만 제이슨은 집요하게 남으려 한다. 어른이지만 어른답지 않고, 아버지지만 아버지가 뭔지 모르는 이 사람과 조지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서로를 감당하는 법을 찾아간다. 영화는 그 과정을 84분에 담는다.
체감은 아기자기한 브리티시 코미디에 가깝다. 다큐 스타일의 인터뷰 컷어웨이, 아이의 상상을 시각화한 몽타주 장면들, 이스트 런던 골목을 파스텔 색으로 칠한 미술 — 샬럿 리건은 가난한 동네 이야기를 침울하게 찍지 않겠다고 결심한 감독이다. 그 결심이 영화 전체의 색을 결정한다.
슬픔을 귀엽게 찍는 일의 용기
영국 키친싱크 드라마는 노동계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리처드 로치 감독의 영화들처럼. 《스크래퍼》는 그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벗어난다. 조지가 혼자 아파트를 청소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드는 장면들은 현실적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비극적으로 프레이밍하지 않는다. 조지가 그렇게 사는 게 조지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불쌍하게 보이도록 찍지 않는 것 — 이게 이 영화에서 가장 존중받는 느낌을 주는 지점이다. 특히 제이슨과 조지가 열차선 너머의 사람들을 보며 대화를 상상하는 장면이나, 제이슨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두 아이가 추측하는 상상 시퀀스는 무겁지 않게 유머와 감정을 동시에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다만 이 '귀여운' 연출이 때로 거슬릴 수 있다. 슬랜트 매거진 등 일부 비평은 과도한 quirky 연출이 현실감을 희석시킨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취향에 따라 영화가 너무 '예쁘게' 포장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이 영화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연기다. 롤라 캠벨이 영화 전반부 내내 유지하는 무장 해제 거부 상태 — 제이슨을 인정하기 싫지만, 내쫓지도 못하는 그 표정 — 은 아역 배우에게서 보기 드문 절제다. 해리스 디킨슨은 본인이 사실 조지만큼 어른이 아니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연기하는데, 이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마다 영화의 밀도가 달라진다.
- 롤라 캠벨의 연기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자연스러움 —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자산
- 슬픔을 무겁게 다루지 않는 연출 태도. 노동계층 이야기를 비참하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
- 84분 군더더기 없는 밀도. 장면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다
- 이스트 런던 골목의 파스텔 색감과 유쾌한 시각적 상상 — 초보 감독답지 않은 화면 감각
- 과도한 quirky 연출이 현실감과 충돌하는 장면들이 있다. 귀엽게 포장하다 감정의 진짜 무게를 놓치는 순간들
- 아버지-딸 재회라는 설정 자체는 새롭지 않다. 이야기의 방향이 예측 가능하게 흐른다
-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 미제공 — 접근성이 낮다
- Metacritic 74점이 시사하듯,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아프터선》이나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자주 비교되는데, 솔직히 그 두 영화만큼의 깊이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다 — 더 가볍게, 더 밝게, 아이의 회복력을 믿으면서.
가볍지만 가볍지 않다는 것
《스크래퍼》가 끝나고 남는 것은 조지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표정이다.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여전히 있고, 두 사람 모두 실수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함께 있기로 한 순간. 영화는 그것을 감동으로 올리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놔둔다. 이 영화가 힐링 장르에 속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이유는 그 "그냥 놔두는" 태도에 있다. 샬럿 리건의 장편 데뷔작으로서는 매우 인상적이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감독이다.
연기 5.0은 롤라 캠벨 때문이다. 84분 내내 화면을 장악하는 아역 배우가 이렇게 드물다는 것을, 보고 나면 새삼 느끼게 된다.
- 1시간 반 안에 가볍고 따뜻한 영화를 원하는 분
- 영국 인디 영화 특유의 서민 분위기와 유머를 좋아하는 분
-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이야기에 끌리는 분
- 선댄스 수상작, 비평가 호평작을 체계적으로 챙겨보는 분
- quirky하고 아기자기한 연출 방식이 불편한 분
-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 전개를 기대하는 분
- 국내 스트리밍 없이 유료 구매 방식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분
- 빈곤과 상실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무거운 드라마를 선호하는 분
조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래 멈춰 있다. 영화도 같이 멈춘다. 그 정지가 이 영화가 건네는 전부다. 해결이 아니라 함께 있기로 한 선택 —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당신이 처음 만난 가족에게 담장 하나를 열어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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